하나님 사랑 – 이웃 사랑 | World Challenge

하나님 사랑 – 이웃 사랑

Gary Wilkerson
January 15, 2018

저는 여러분에게 언젠가 듣게 될 가장 단순한 것에 대해 전해야 한다는 성령님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삶을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깊고 더 복잡한 신학이 우리에게 필요할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입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당신의 하늘 아버지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이보다 더 위대하거나, 심오하거나 현실적인 진실은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어요.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첫 단계잖아요. 이것이 왜 계시적인 소식으로 간주되어야 하죠?”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어떤 것 보다 이해하는데 어려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할 핵심가운데 하나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영향력을 갖고자 한다면 이 견고한 진리가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7). 물론 보혜사는 성령이며, 도우시는자, 위로자입니다. 왜 예수님은 우리에게 위로자를 보내야만 했을까요? 그분은 우리가 고통받을 것을 아셨기때문입니다.

이 타락되고 망가진 세상에서의 삶은 우리 앞에 많은 환란이 가져옵니다. 그 가운데에는 우리의 건강, 자녀, 생존의 문제들을 포함한 극심한 고통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통과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우리에게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시련 속에서 괴로와할 때 하나님의 영이 우리로 기억나게 하시는 실제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시 139:17). 다윗이 이 시를 쓸 때 그는 위로자가 함께 하심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번역이 있습니다. “당신이 염려하시는 나를 향한 주의 생각이 어찌그리 소중한지요.”

저는 이 말씀에 감동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알아야할 한 가지입니다. 이는 신학적인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또 다른 한 가지는 결코 쉬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측량하기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다윗의 시를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의 주목을 받기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난 이미 너에게 집중하고 있다.”

성장하면서, 저는 또 다른 신학적 명제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보실 때, 당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신다”. 그 이론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눈에 죄인입니다. 하지만 죄없으신 예수님에 의해 덮힘받았기 때문에 그는 우리의 죄를 보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어린 저로서는 그의 시선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원치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를 보시기를 원했습니다. 마음속에 그리던 하늘의 아버지와 포옹하거나 대면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무엇가에 골몰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생각들 중 일부에는 책망이나 징계가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두는 순전한 사랑에 바탕을 둔 선한 생각들입니다.

슬프게도, 우리들 대부분은 하나님을 그렇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분의 생각은 “한번만 더 그렇게 한다면, 나는 너에게서 떠날거야”라는 식입니다. 아닙니다. 다윗이 말하기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보배롭습니다.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사랑스런 존재이며 그분은 우리와 동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그의 계획들은 우리에게 선한것들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아는 것에 관해, 우리의 머리로부터 마음에 이르는 18 인치 여행이 가장 어렵습니다.

저는 머리에 신학으로 채워넣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의 그리스도인입니다. 새파란 젋은 사역자였던 저는 아버지의 서재를 공략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인간과 맺어신 언약들에 관한, 노아로부터 아브라함, 다윗 그리고 새 언약에 이르기까지의 책들을 읽었습니다. 어느날 제가 성경공부를 하던 중에 주님이 저에게 다가 오신것을 느꼈습니다. “나의 새언약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계시해주기를 원하니?” 물론입니다!

다음 순간 주일학교 찬송이 저의 생각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예수 사랑 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예수님이 날 사랑하신다라는 말은 너무나 단순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랑을 마치 이해 한 것처럼 흥분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진실로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사랑으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그의 생명을 쏟아부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모두가 진실입니다. 나의 하늘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 말은 새언약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사랑을 정말로 알았더라면, 단지 머리로만 아니라 가슴으로, 모든 것들이 변화할 것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지 모르는지 확실히 알수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이 간단한 잣대로 우리의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 4:18).

우리는 아버지의 생각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웁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성취에 바탕을 둔 자기판단에 의해 사로잡힙니까? “나는 불신자들에게 주님에 대해 잘 전하였던가? 계산대 직원에게는 친절하였던가?" 아니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은 성취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것을 사랑으로 대체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육적인 두려움이 동시에 우리 마음을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밀어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안다면, 모든 두려움이 밀려나가고 그 사랑이 중심에 자리잡게 됩니다. 그의 사랑을 앎은 자유로움으로 인도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하나님의 사랑을 앎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 전체를 부르심에 따라 살도록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완전히 사랑할 자유가 있습니다. 이제 저는 사역을 사랑하며 설교하기를 좋아합니만,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확신하지 못합니다. 점차 사람들을 더 사랑하는 것이 저의 인생에서 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와같이 내향적인 사람에게는 정말로 씨름과도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겁나는 일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잘못 전하거나 무엇인가 부정확한 것을 말해 심지어 누군가를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두려움에 대해 썼습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전 2:16). 그리스도의 마음? 심지어 더 두렵게 들립니다. 그렇지만 성령님이 저에게 상기시켜 주시기를 “그것은 너의 문제가 아니다, 게리, 그것은 너를 통해 행하는 나에 관한 것이다” 이는 저로 사랑하도록 자유케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심오한 신학적 신비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 빛을 전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그 빛을 두려움의 그릇으로 덮어두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빛이 잃어버린 자들의 눈을 뜨게하기 위해 빛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가 어떻게 사역할지 알도록 우리의 마음을 밝혀줍니다.

몇 달전, 켈리와 제가 지역 쇼핑몰에서 볼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 청년이 신체를 통해 전기 신호를 보내는 장치를 시연하고 있는 키오스크에 멈추어 섰습니다. 필요한 것들 중 무엇이 덜 중요한 항목인지 생각할 수 없지만 그에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연결해 보세요”. 그가 전원을 켜려는 순간 두번째 생각이 떠올랐고, 그의 보스가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녀에게 다가가 예수님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녀는 재빨리 저의 말을 멈추고 말했습니다. “저는 유대인입니다.” 오늘날 이것은 복음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도 멈추기에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우리의 문화적 풍토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종교의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일입니다. 첫째 이유로, 사랑의 마음에서가 아니라 개종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것처럼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또 다른 문화적 금기인, 다른 종교들은 잘못되었다는 암시를 줍니다. 저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제 안에 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말하기를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사랑하십니다. 사실 그 분은 무슬림들도, 불교도들도, 무신론자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녀는 그 부분에서 안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무엇이든 기도가 필요한지 물었습니다. 즉시 그녀는 자신의 지갑을 열고는 2살된 딸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이 아이를 생각하면 너무 걱정이 되어요” 분명 그녀의 어린 딸이 자라게 될 세상에 대한 염려였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좋아요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주변에 있던 전기 신호 장치가 소음을 내는 가운데, 켈리와 저는 그녀의 손을 잡고 쇼핑몰 한 가운데에서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신뢰한다면, 성령님은 우리를 가장 어색한 장소, 도저히 추수의 들판으로 볼수 없는 곳으로 인도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나누게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은 하나님이 그의 일을 하시는 곳이며, 또한 우리가 있어야 할 필요가 있는 곳입니다.

깨끗한 새 성경책을 사서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많은 구절들에 밑줄로 표시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우리 모두는 성경 공부 시간이 되면 이상주의자들이 됩니다. 우리 자신들을 위해 맞춰진 많은 이상적인 구절들에 밑줄로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소용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결코 성취되기를 구하지도 않을 하나님의 언약들에 마킹합니다. 우리는 결코 행하지도 않을 행동 지침들에 마킹합니다. 저는 이것이 부정적이란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좀 더 현실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 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복잡한 일이 아닙니다 “온 천하,” 라 함은 우리가 세상에서 매일 거주하고 있는 슈퍼마켓, 주유소, 쇼핑몰, 사무실, 학교 등을 포함합니다. 이곳들이 그의 영광을 나타내는 장소들입니다. 그의 사랑의 “대상이 되는 청중” 은 화이트보드위의 어떤 누군지 모를 관념이 아니라 우리의 육과 혈의 이웃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는 어디에서 복음에 대해 말합니까? 교회에서, 성경공부 모임에서. 구역모임에서. 그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온 천하” 가 아닙니다. 그가 우리에게 준 위임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단순한 말로 전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19).

정말 단순합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반응하신, 가장 찬란한 신학적 정신을 들어보십시오.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5-40).

저는 여기서 예수님의 답변에 대해 두 가지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새 성경책에 밑줄을 칠 수 있습니다). 첫째, 두 계명에서 공통된 단어는 동사 사랑하라는 오직 한 단어입니다. 둘째 이웃을 사랑함은 하나님을 사랑함과 동일하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놀랍게도, 이는 하나님 섬김이라는 신비의 세계의 것을 견고한 터로 옮겨놓았습니다. 이보다 더 명료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를 위해 실행하신 예수님의 삶을 봅시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행 10:38).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러한 삶을 원합니다. 성경에서 발췌한 실행 목록을 지키는 것이나 신학적 신비들을 쫓거나, 같은 그리스도인끼리 아버지의 사랑에대해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하기를 원하십니까? 모든 자기판단을 넘어서기를 원하십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기를 원하십니까?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아버지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자 이제 가서 그대로 행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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