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 없는 양
사람들이 한 맹인을 예수께 고쳐달라고 데려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손을 잡고 동네 밖의 외진 곳으로 데려가셔서 그 눈먼 남자의 눈에 침을 뱉으셨습니다. 어떤 문화권이던지 이 건 모욕적인 행동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뭔가 볼 수 있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랬더니 맹인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보입니다. 마치 나무가 걸어 다니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이 사람은 희미하게 만 볼 수 있어도 감격스러웠을 텐데 예수님께서는 그가 선명하게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무엇인가 놓친 부분이 없나 알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창조의 완벽한 영광을 증거하고 싶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그 맹인의 눈에 손을 대셨고 순식간에 깨끗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시력이 온전히 회복 된 것입니다. (막 8:22-25).
저도 저의 삶에 이와 똑같이 행하시는 하나님을 여러 번 보아왔습니다. 제가 처음 그분께 저의 마음을 드렸을 때 저는 영광스런 감격을 맛보았지만 당시의 저의 비전(역자 환상,꿈)은 희미했고 혼란스러웠으며 생소하였습니다. 여러 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저를 단련하셨고 제 비전이 더 뚜렷해질 때까지 제 영과 마음의 중심을 만져가 셨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분명하게 볼 수 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저 한 군중의 무리가 아니라 제 앞에 하나하나 개인적인 인격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의 눈으로 저도 그들을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상처입고 길을 잃은, 양치기를 잃은 양들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만지셨을 때 저희의 삶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그가 하시도록 주권을 내어드리는 우리의 의지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절대 그 단계에서 올라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지시도록, 우리를 실명된 상태에서, 죄의 완전한 어두움 가운데서 건지시도록 내어드리지만 그 후 미숙한 시야에서 대강 만족하며 머무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께서 우리를 더 깊이 만지시도록 주권을 내어드리고 우리의 눈과 마음으로 더욱 분명하게 목표를 바라본다면 주께서는 우리를 비전으로 더욱 성큼 데려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도 그분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