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의 아들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큰 믿음의 시험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의 입증된 믿음 뿐 아니라, 이삭을 바쳤을 때 아브라함은 이 땅에 속한 것으로부터 분리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어떤 목적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 땅에 속했지만 더 이상 이 땅의 사람이 다른 세상에 속한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히브리서에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떻게 얘기하고 있는지 보자. “그는 영문 밖에서 고통을 당하셨다” (13:12). 예수님은 외인처럼 즉 형식적인 종교의 규율에서도 벗어나고 사회에서도 인정받지 않은 채 고난을 당하셨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머리 둘 곳이 아무 데도 없는 외인이셨다.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님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리 주님처럼 그리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우리는 여기에 있는 도성이 아니라 다가오는 성을 바람이라” (13:14). 우리는 이 땅에서 일하고 살지만, 우리의 진정한 고향은 예루살렘인 까닭에 우리는 이 곳에서 외인이기도 하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3:13)” 우리가 영문 밖에 있는 것처럼, 이 땅의 모든 욕망과 물질의 바깥에 있기도 하지만 아직 우리의 신랑되신 분이 있는 곳에 있지는 않다.
나는 좋은 집에 살면서 좋은 차를 몰고 있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그런 물질적인 것이 내 마음을 앗아가지 못하도록 늘 깨어서 조심한다. 중요한 사실은, 당신이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리스도를 그렇게까지 바라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산을 움직일 모든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 (고린도전도 13:2)
슬프게도 주위를 돌아보면, 수 많은 믿음이 좋은 기독교인들이 있지만, 주님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가진 이들을 드물다. 대신, 우리의 눈을 세상의 것들에 두고 그것을 어떻게 가질 것인지에 관심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하늘나라에 중심을 두고 세상과 분리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런 메시지는 그들이 지금 즐기고 있는 좋은 인생에 대한 방해일 뿐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문 밖으로 몰아내시는 좋은 방법들이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내가 너에게 내 아들을 배우자로 주려면, 네 인생에 다른 어떤 것도 네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안된다. 나는 그리스도 이외에는 네가 아무 것도 탐내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너의 가장 신나는 꿈, 가장 강력한 마음의 소망,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은 것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