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킬 자를 찾는 사탄

David Wilkerson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벧전 5:8-9).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면 사단을 대면할 준비를 하십시오. 여러분은 아마도 사단에 대해 생각하거나 사단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조차 싫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전심으로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했다면 사단은 이미 여러분을 파괴자 명단에 올려놓았습니다. 게다가 사단은 여러분의 삶에 각종 고난으로 홍수처럼 밀려들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경고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 4:7) 다시 말하자면 지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지낼 시기가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 영적인 일에 민감하고 분별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입니다."라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리도 심각하고 진지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마지막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대적은 극도로 흥분된 상태에 있습니다. 그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쫓아다니며, 때론 풀숲에 숨어서 우리를 덮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삼키려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믿음을 완전히 파괴하기 위한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사단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사단을 무시하는 것이 우리에게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사단의 존재를 부정하려 합니다. 예를 들어 자유신학자들은 사단, 지옥, 천국과 같은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의 대적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그렇게 뚜렷하고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존재는 별로 없습니다. 그는 루시퍼, 사단, 악마, 속이는 자, 훼방하는 자, 사악한 자, 강탈하는 자, 사기꾼, 고소하는 자, 삼키는 자, 이 세상 신, 어둠의 지배자, 옛 뱀 등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뚜렷한 묘사는 사단이 실재(實在)한다는 사실을 제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성경을 통해 사단이 실제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는 이 땅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국가들과 도시에서, 교회와 가정과 우리 개개인의 삶 가운데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히 우리를 대적하는 사단과의 영적 전쟁에서 그들의 전략과 전술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단이 역사적으로 세 번 전쟁을 선포했다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계시록 12장은 사단이 전쟁을 선포한 세 번의 사건을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1. 그는 첫번째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한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다르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계 12:79).

이 구절은 사단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때를 상기시켜 줍니다. 그때 사단은 큰 권세를 갖고 있는 천사 루시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루시퍼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천사 중 삼분의 일을 동원하여 하나님께 대한 반역을 지휘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루시퍼를 반역에 가담한 천사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쫓으셨습니다. 하늘에 속한 자들이 모두 승리를 기뻐했습니다. 마귀는 전쟁에서 졌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처소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2. 패배한 사단은 그 후 두 번째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했습니다.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계 12:1-4).

사단은 구약시대의 남은 자들로부터 위대한 교회가 탄생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의의 해를 입은 영광스러운 지체가 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다시 한번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번에는 그의 영토, 이 땅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이 구절은 사단이 마리아의 태 안에 있는 아기에게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태어나는 동시에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사단의 모든 힘을 베들레헴 주변에 결집시키고 서기관, 제사장, 그리고 바리세인들의 눈이 멀도록 속이는 영을 보냈습니다. 만약 사단이 그리스도를 직접 죽일 수 없다면 그를 위해 대신 그 일을 수행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군대, 하늘의 천사들이 사단이 아기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마귀는 그리스도를 삼키기 위해 또 다시 30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될 무렵 다시 한번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선포하실 때였습니다. 그때 사단은 광야에서 그리스도를 시험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전투에서도 사단을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다시 보호하셔서 천사들을 보내어 육신이 지치신 예수님을 수종들게 하셨습니다.

사단은 그리스도를 삼키기 위한 마지막 시도를 거행했습니다. 이번에 그는 십자가로 예수님을 죽이며 예수님을 무덤으로 내어 던지는데 모든 힘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악마의 영을 보내어 군중들을 선동하고 제사장, 군인,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거짓 증인들의 몸 속에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마침내 사단은 그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전면전을 수행할 태세였습니다.

그러나 그 뒷 얘기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부활절은 사단이 가장 수치스런 패배를 당한 날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실 때 예수님은 마귀의 손아귀에서 영원히 벗어나셨습니다.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계12:5). 사단이 다시 패하자 지옥에 속한 모든 것들이 흔들렸습니다. 자신의 모든 권세를 동원하고도 사단은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3. 사단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인 전쟁을 그리스도의 씨에게 선포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지구상의 모든 믿는자들과 현재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계 12:13).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 12:17).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그의 분노를 쏟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주님을 신뢰하는 성도들을 향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악의 노여움을 남겨두었습니다.

마귀는 이 전쟁이 그의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신부들을 위해서 돌아오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계 12:12). 그러므로 교회를 대항한 사단의 전쟁은 역사상 가장 격렬한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께 잃은 땅을 되찾고 싶어합니다. 그는 주님의 신부들의 믿음을 파괴하기를 그 어떤 경우에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그가 우리를 훼방하기 위해 모든 무기, 모든 미세한 것들, 속임수, 그리고 기구, 장치 등을 가리지 않고 동원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우리가 우리의 대적과 대면하고 있는 끔직한 영적 전쟁에 관한 계시를 받기 위해 부지런히 기도해 왔습니다.

제가 어린 설교가 이었을 때는 영적전쟁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승리가운데 거하는 자는 누구나 사단을 대적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저에게는 승리란 단지 사단을 대적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일 따름이었습니다. 하지만 곧 저는 사자가 크게 표효하면서 전력을 다해 저의 약점을 덮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더 이상 사단과의 전투를 벌이기에 무기력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흔히 저는 마귀가 똑 같은 행위를 다른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벌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수많은 경건한 종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 심령이 순전하고 은혜 안에 거하는 자들, 하지만 곧 홍수처럼 덮쳐오는 사단이 주는 혼동과 절망 속에 갇혀버리고 마는 이들 말입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도 여러 해 동안 주님을 위해 부지런히 수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느 날 사단은 그들의 마음속에 비난, 고소, 참소하기 시작합니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그들은 엄청난 고통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예상치 못했던 시험, 탐심, 낙심 등등. 그들이 겪는 시련은 너무 깊고 이상하고 신비하기까지 합니다. 이 성도들은 그러한 것들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저는 해답은 한 가지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겪는 고난은 사단의 맹공에 의한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일이 순조로운 성장의 과정을 거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는 것을 여러 차례 봐왔습니다. 그들이 영적성장의 최고조에 달했을 때 사단은 그들의 길 한가운데 오래된 시험의 덫을 놓습니다. 그것은 옛날에 가졌던 육욕일지 모릅니다. 그들이 여러 해 전에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 여러 해 동안 승리가운데 지낸 시점에서 그들은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금 그들을 예전의 끔찍한 속박가운데로 이끌 정욕의 탐닉이라는 벼랑 끝에서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한 노목사님에게서 가슴이 미어지는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65세입니다. 저희 교회 교인들은 저를 기도의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악한 생각들이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제 생애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정욕이 제게 생겼습니다. 저는 아직 시험에 넘어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달째 계속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대적으로부터의 공격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번창하게 하신 사역을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귀한 성도를 삼키려는 사단의 시도라고 믿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결혼생활 또한 전에 없이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서로를 사랑해오던 부부가 갑자기 그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수렁에 갑자기 빠져들곤 합니다. "저는 제 남편을 사랑합니다"라고 이야기하고는 바로 다음 순간 "저는 그 사람을 견딜 수가 없어요. 그 사람 근처에 있기도 싫어요!"라고 외치는 신실한 자매도 있습니다. 이것이 경건한 결혼생활을 파괴하고 삼키려는 사단의 시도 외에 무엇이겠습니까?

이러한 부부들은 날이 갈수록 희망을 잃고, 시험을 당하며 낙심합니다. 그리고 곧 사단이 또 다른 비난하는 생각으로 그들을 홍수처럼 덮칩니다. 너는 부모로서 실패했어. 저는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해. 너는 하나님과 친밀하지도 않아. 너는 사기꾼, 위선자야. 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너는 그리스도인 부부로서의 본이 될 수 없어.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관계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상담가나 목사나 혹은 심리학자의 진단 밖의 일입니다. 아무도 그 결혼을 사로잡고 있는 파괴의 영을 깊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초자연적이며, 사단의 것으로서 지옥으로부터 온 직격탄입니다. 사단은 예수님이 주인이신 모든 가정을 대항하여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파멸과 혼돈을 가져올 그가 가진 모든 도구를 다 사용하기 전에는 결코 쉬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모든 시련과 고난과 시험은 마귀가 홍수처럼 닥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계12:15-16). 이사야 선지자 또한 사단이 주님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모든 자들에게 홍수처럼 닥쳐올 것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해 지는 곳에서 주의 영광을 두려워 할 것이다. 원수가 강물처럼 몰려오겠으나, 주의 영이 그들을 물리치실 거이다"(사 59:19, 표준새번역)(역자 주: 한글 개역판의 이사야서 59장 19절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에서 여호와는 NIV의 he를 번역한 것인데 아마도 한글 개역판의 오역인 것 같습니다. KJV 성경에서 he는 여호와가 아니라 사단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저도 이런 하수, 홍수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또 셀 수없이 많은 성도들이 현재 그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들은 지옥으로부터 흘러나온 박해와 물리적인 공격, 정신적인 괴롭힘, 적으로 돌변한 친구들, 불 같은 시험과 정욕의 홍수 속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단은 전면적인 최후의 공격으로 우리를 완전한 절망 속에 쓸어 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왜 마귀는 그토록 잔인하게 의로운 자를 덮치고 있는 것입니까?

사단이 교회를 대적해서 움직이는 방법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반역, 거역이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반역이란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와 권위에 대항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루시퍼가 하나님께 전쟁을 선포했을 때 그는 전능하신 자의 말씀을 거역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해와 달과 별들이 운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생명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 의해서 하나님은 통치자들을 권좌에서 내리기도, 나라들을 세우기도 하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축복과 구원, 심판과 멸망을 행하십니다.

사단의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을 시험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아담과 이브에게 반역의 생각을 심어서 그들로 하여금 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알아. 그러나 나는 내 의지대로 행동할거야 라고 판단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러한 생각들은 인류의 타락을 야기 시켰습니다.

사단은 또 반역, 거역의 씨앗을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 심는데 성공했습니다. 시편기자는 이스라엘을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라고 하였습니다. (시78:8) 말씀은 또한 이스라엘에 관하여 너희가 올라가기를 즐겨 하지 아니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거역하여 (신 1:26)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매우 명확하게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에게 자신의 말씀을 드러내셨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십시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그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사악한 자의 시험에 넘어간 것입니다.

사단은 또한 여러분을 시험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할 것입니다. 그는 뻔한 유혹과 시험으로는 여러분을 조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러분의 삶을 고통과 몸부림, 시련의 홍수로 가득차게 함으로써 미묘한 유혹의 주사를 여러분의 마음속에 슬그머니 놓습니다. 그리고는 바울의 사역가운데 그가 훼방을 놓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삶 속에 임하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많은 자들이 사단의 이러한 포착하기 어려운 시험의 먹이가 되고 맙니다. 시편기자는 그런 믿음을 가진 자들을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 107:10-11).

사단은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단 한 가지, 단 하나의 영역를 찾고 있습니다.

사단은 여러분을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나 불량배 따위로 만드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의 단 한 가지 영역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단이 거점을 마련하기에 충분한 공간이 확보될 것입니다.

바로 지금 사단은 우리 삶에 관한 첩보 보고서를 수집하기 위하여 타락한 천사들과 종들을 경계상태로 준비시켜 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단적인 존재들은 우리의 행동을 읽으며 우리의 대화를 듣습니다. 그리고는 육적인 약함을 하나 발견하면 모든 지옥 같은 시험을 그 약한 부분을 향해서 쏘아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요 14:30) 결국 주님은 사단이 나를 향해 올 때 내게서는 거점을 삼을만한 어떤 것도 발견치 못할 것이다. 나는 완전히 내 아버지의 권세아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단은 그 삶이 완전히 하나님께 드려진 성도는 누구라도 그 육체나 영혼가운데 침범할 수 없습니다. 그가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일은 값의 일부를 챙기려 할 때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는 자기들 소유의 땅의 일부를 팔아 그 수입금을 예루살렘에 새로 세워진 교회에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베드로의 발등상에 헌금을 내려놓았을 때 베드로 사도는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행 5:3). 베드로가 이 말을 그들에게 하자마자 그들은 현장에서 쓰러져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 교회에 주시고자 하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그 교훈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소유하고 있었던 물리적인 땅덩어리와 관련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들의 내면의 마음밭과 관련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 부부는 하나님께 95 퍼센트 순종하고 아주 작은 영역에서만 불순종해도 안전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이 선포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진리를 거역했습니다. 그들은 확신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지만 이 한가지만은 놓을 수 없어. 그것은 성령께 한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숨긴 값의 일부는 돈과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의 마음가운데 있는 아주 작은 탐심의 영역과 관계된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부분이지만 사단에게 거점을 제공하기에는 충분한 공간입니다. 그들의 완고한 불순종으로 그들은 대적이 그들의 마음을 채우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 4:27) 라고 경고했던 이유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삶을 억누르는 값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어두운 부분이나 숨겨둔 정욕, 혹은 거역함 없이 우리의 삶을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단에게는 털끝만큼의 영역도 허락하지 마십시오. 그만큼이 바로 사단이 출입구를 얻고 기지를 만들기에 필요로 하는 부분입니다.

저는 사단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서 그가 필요로 하는 영역을 확보하는지 4가지 예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1.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5).

여러분은 정말 좋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친절하고 사려 깊고 후히 베푸는 사람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히브리서의 말씀을 읽고 일부러 무시한다면 여러분은 사단에게 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매주 하나님의 집에 가서 의를 행하도록 영적 자극을 받는 대신 일요일 아침을 침대에서 누워서 보내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그 사기꾼에게 여러분의 마음 한 구석을 내어 준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여러분은 값의 일부를 숨기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다음 구절이 하나님의 말씀 한 부분을 무시함으로 우리가 초래하게 되는 심판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히 10:26-27).

2.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 6:14-15).

그리스도는 이렇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너희들은 너희 삶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 경건하고 신실하게 순종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향해 용서하지 않을 것을 고수한다면 아버지께 용서를 받지도 못한 채 너희 죄악이 너희를 대적하여 쌓이는 것이다.

용서하지 못한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은 여러분에게 죄를 저지른 사람보다 여러분이 더 큰 빚을 지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 사람은 이미 회개하고 주님께 용서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자신이 받은 상처에 집착한다면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이미 지불하신 값을 그에게서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누구에서든지 그것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못하는 것의 가장 위험한 요소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을 사단이 침범하도록 열어주었다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은 자기의 땅이라고 표시를 하고는 자신의 사업을 시작합니다. 여러분을 삼키는 작업 말입니다. 여러분은 값의 일부를 숨김으로써 그러한 일이 발생하도록 방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야고보는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약 3:14-16).

야고보가 여기서 누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주목하십시오. 13절에서 그는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빼어난 영적 지혜와 지식을 소유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가정에 불화가, 여러분의 마음에 적개심이, 여러분의 직장에 질투가 있다면 여러분이 영적이라고 절대로 생각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거짓에 현혹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감 때문에 결국 사단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알고 계십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외면은 점점 내면에 가지고 있는 어두움을 드러내게 됩니다. 결국 그들의 육체는 망가지고 병들고 무기력해지며 정신적 고통까지 겪게 됩니다. 사단에게 그런 기회를 줄 때마다 사단은 완전히 파멸시켜버립니다.

자, 해보십시오. 원한을 품으십시오. 반감을 계속 가지십시오. 계속 불화를 일으키십시오. 그렇게 하신다면 여러분은 완전히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사단에게 내어주게 됩니다. 여러분은 영적으로 눈먼 자가 되고 마음마저 강퍅해질 것입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영적이라면 즉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이 아무리 상처를 입었든지간에 여러분은 용서함으로써 온유와 화평의 지혜를 보일 것입니다.

4. 얼마 전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저는 사단이 어떻게 아주 작은 부분을 자신의 거점으로 삼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예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저는 모슬렘 사원이 있는 곳을 보았습니다. 그 보잘것없는 좁은 영토는 1 에이커(약 1200평)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찌됐든 사단은 그 땅을 손에 넣었고 자신을 위한 사원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곳은 성경에 언급된 바와 같이 멸망의 가증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마귀는 자신의 권세를 하나님께서 한 때 선택하셨던 백성 이스라엘의 한가운데에 집중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단이 아주 조그만한 거점을 마련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이 아주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차지하게 될 때 하는 일을 보여주는 생생한 그림입니다.

이러한 포식자에게서 우리를 지킬 방어막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만일 어느 그리스도인에게든지 어떻게 마귀와 싸울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그는 아마도 야고보서 4장 7절을 낭독해 줄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하지만 야고보가 의미하는 대적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우리는 사단의 권세를 대적할 수 있습니까?

요한은 계시록 12장에서 우리에게 답을 주고 있습니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계 12:11). 사자가 포효하는 소리를 들으시거든, 홍수가 차오르거든, 어찌할 줄 모르겠거든 그저 지성소로 달려가십시오. 믿음으로 보좌 앞 하나님의 존전에 들어가십시오. 어린양께서 그의 피로 이미 여러분을 위한 길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히 10:19-20) .

여러분이 홀로 기도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여러분은 사단의 온갖 장치들에 무감각해 집니다. 믿음으로 보좌로 달려가십시오.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보혈의 권세 위에 서십시오.

요한은 다음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때를 양육받으매" (계 12:14). 저는 여기서 언급된 독수리의 두 날개가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양육받을 광야로 우리를 옮기우시기 위해서 두 날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단이 우리에게 닥쳐올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날개로 사단을 넘어 날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도 바울도 양육이라는 단어를 쓴 적이 있습니다.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딤전 4:6). 여기 쓰인 양육이라는 헬라어는 교육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말씀으로 교육받는 것,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식이 풍성해 지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본이십니다. 주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을 대적했을 때 마귀는 도망하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진리가 사단의 정체를 드러냈으며 그에게 수치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 모든 이들이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히 11:3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섬으로써 지옥의 권세를 틀어막을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거든 아버지 앞에 엎드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여러분을 담그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독수리의 날개가 여러분으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시험의 홍수 위를 매번 날아가게 해 줄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