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여러분은 성도들로부터 “하나님이 그의 교회에 새 일을 행하고 계신다“라고 하는 말을 얼마나 자주 듣습니까? 그들이 말하는 “새 일“이란 부흥, 성령의 부으심, 그리스도의 강림, 혹은 하나님의 운동으로 불리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새 일“은 너무나 자주 빨리 잊혀지고 맙니다. 그리고 희미하게 사라지고 나면, 다시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로 인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운동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됩니다. 기독교 사회학자들은 소위 강림이라고 불리는 과거의 많은 예들을 조사하였습니다. 그 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행사의 평균 주기가 5년 이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하나님이 오늘날 그의 교회에 새 일을 행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성령의 역사는 어느 한 지역에서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보기 위해 멀리 여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새 일“은 가장 가까운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운동을 주관하는 성경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원리를 신 구약 성경 모두에서 계속해서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 역사를 통해서 진실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이 원리는, 하나님은 그의 교회에서 옛 것을 없애기 전까지는 결코 새 일을 시작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낡은 가죽 부대에 새 술을 담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그의 교회에 있는 낡은 것과 다투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할 때마다 몇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냉담과 위선이 스며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의 교회에서 옛 것은 무시하시기로 선택하셨으며, 새 것을 들여오기 전에는 철저히 버리시게 되었습니다.
이 원리는 실로에서 처음 나타났습니다. 유다 시대에 하나님은 그 도시에서 거룩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실로는 주의 성소가 있던 곳이었으며, 이스라엘의 종교적 활동의 중심지였습니다. 실로란 이름 자체가 주님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나타내며 그의 본성과 성품을 드러냅니다. 실로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였던 장소였습니다. 또한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곳이기도 하며, 주님이 그의 뜻을 그에게 계시하셨던 곳입니다.
하지만 엘리는 실로의 대 제사장이었으며, 그의 두 아들들은 성소를 섬겼습니다. 엘리와 그의 아들들은 나태하였고 세속적이었으며, 완전히 사욕에 빠졌습니다. 그들이 사역하는 동안, 그들은 큰 죄악이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도록 허용하셨습니다. 시간이 지나, 실로는 타락하였으며, 곧 하나님의 사람들은 탐욕과 우상 숭배와 위선으로 채워졌습니다.
결국 주님은 실로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중단하셨습니다. 그는 사무엘에게 본질을 말씀하셨습니다. “실로가 너무 더럽혀졌기 때문에, 더 이상 내가 누구인지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이 집은 이제 나와 상관이 없다.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다. 이제 끝났다.“ 그래서 주님은 그 성소로부터 그의 임재를 거두셨습니다. 그리고 그 문 위에 “이가봇“이라고 쓰셨는데, 그 뜻은 “주님의 영광이 떠났다“라는 의미입니다.
그 순간 실로는 회복이 안 될 정도로 죽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회복할 희망도, 개혁의 희망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실로로 육체가 되게 하였으며, 나는 계속 일하고 있다. 나는 완전히 새로운 집을 세울 준비가 되었다.“
사람들의 어떤 조건이 그들로부터 하나님의 임재를 거두어가게 하였을까요? 실로의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몇 년 동안 그 사회의 틈 사이에 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겸비하게 “주님 저희를 버리지 마십시오“라며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진리에 대해 완고해진 한 민족을 보았습니다. 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종교적인 의식은 다 지켰으며 모두 옳은 말들을 하였지만, 그들의 마음은 그것과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일은 정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회복할 가망성이 없었습니다. 대제사장 엘리는 그 자신의 타락에 완전히 장님이 되었습니다. 그와 그의 두 사악한 아들들은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옛 것을 완전히 제거하고서 다시 새 것을 세우셨습니다. 이 후, 예루살렘의 성전은 “주님의 집“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잠시 동안 하나님은 그곳에서 말씀하였습니다. 그 집은 기도로 채워졌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으며,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사람들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나타내었으며, 하나님은 그곳에 임재하셨습니다. 한번은 그의 영광이 성전에 너무나 강력히 임하여 제사장들이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일도 부패하고 말았습니다. 백성들 가운데 타락이 한번 더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주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역사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새 일이 냉담과 위선을 낳기까지는 불과 몇 세대가 걸리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항상 그들의 사역을 육체적으로 끌고 갔기 때문입니다. 사역을 시작한 뜨거운 열정은 식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역은 인간적인 제도로 변해갑니다. 생명 없는 판에 박힌 틀이 형성 됩니다. 한때 기도의 사람이었던 지도자는 계속 일을 해나가기 위해 이제 조직과 육체적인 기술에 의지하게 됩니다.
한때 이 동일한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으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략적 이해에 따라 하나님의 종 됨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역을 하기 보다 권력과 명성과 숫자를 채우고 있습니다. 슬프게도 그들의 사역은 하나님이 한때 그들 가운데 그의 능력과 진리로 이루어 놓은 것에 대한 잊혀진 기억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하나님은 이러한 종류의 타협에 대해 반응하였습니다. 그는 선지자를 성전 문으로 보내어 통렬한 말씀을 선포하게 하였습니다.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예레미야 7:3).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너희는 타락하였다. 이제 사망이 문에 이르렀다. 하지만 구원의 시간이 여전히 있다. 나는 떠나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너희와 함께 거하며 너희 가운데로 들어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너희가 회개해야 한다. 너희의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7:4).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주께서 이 성전을 무너뜨리지 못하신다. 이는 영원한 집이다. 우리의 역사이며 굳건한 전통이다. 이 웅대한 건물을 보라. 이방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증인처럼 서 있다. 그는 결코 그가 이곳에 세워 놓으신 것을 포기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응답하셨습니다. “너희의 타락을 보라. 너희의 만연한 우상 숭배를 보라. 너희는 거짓 맹세를 하며, 우상들 앞에 절하고 있다. 너희는 나의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 나는 너희에게 예언자들을 보냈으나, 너희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너희에게 말하였으나 너희는 듣지 아니하였다. 내가 너희를 불렀으나 너희는 응답하지 않았다.“
이제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시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7:12). 그는 재촉하셨습니다. “모든 목자들과 제사장들은 오라. 기록을 찾으라 그리고 너희 자신을 위해 내가 행한 길을 보라. 실로에 있는 나의 집을 되돌아 보라. 내가 그곳에 나의 교회를 세우고 나의 이름을 그곳에 두었다. 하지만 백성들이 나의 예언자들을 거절하였다. 그대신 그들 자신들의 방법을 쫓았다. 그래서 나는 옛 것들 완전히 제거하였다.
이제 나는 그것을 다시 할 준비가 되었다. 너희는 실로와 같도다. 너희는 죄를 허용하였으며 나의 집을 오염시켰다. 너희는 너희의 길을 너무나 타락시켰으며 더 이상 회개하지 않는구나. 주위를 보라 누가 이 틈 사이에 서 있느냐? 누가 통회하는 심정으로 부르짖고 있느냐? 내가 냉소와 위선을 보았도다. 실로에서 나의 임재를 거두었다고 분명히 경고하였노라. 그리고 이제 너희로부터 돌아설 것이다. 너희로부터 나의 영광을 거둘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의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준 이곳에 행하겠고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냄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 찌니라“(7:14-15).
다시 한번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옛 것은 지나갔다. 끝났다. 너희는 결코 나에게 회개하지 않는구나. 진실로 나를 세계 가운데 나타낼 한 백성을 택할 것이다. 나는 완전히 새로운 일을 행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선언으로 마치었습니다.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7:16).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옛 일을 위해 기도로 조르지 말라. 이미 죽었으며 회복의 희망은 이미 지나갔도다.“
그리스도께서는 초청과 경고로 성전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성전에 서셔서 모든 사람들을 그의 자애로운 날개 아래로 초청하였습니다. 그분은 소경, 병든자, 나병환자, 가난한 사람, 잃어버린 영혼, 모든 사람들에게 와서 치유와 용서를 받으라고 외치었습니다. 하지만 종교적인 군중들은 그의 제안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선언하셨습니다.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태복음 23:37).
이 말씀을 읽을 때 저에게 한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신약시대의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행하신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옛 것들을 처리하실까요? 그의 은혜의 제안과 자비와 일깨우심을 거절한 낡은 것들을 버리실까요?
예, 그리하실 것입니다. 자신을 거절한 자들에게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23:38).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은 이제 너희들의 집이지 나의 집이 아니다. 내가 떠날 것이다. 너희들이 훼손하고 황폐시킨 것들을 버릴 것이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23:39). 주님은 그들에게 선언하셨습니다. ?나의 영광이 더 이상 이 낡은 것에 거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내가 거절하였다. 너희의 남은 종교적 삶은 하나님의 임재와 상관이 없이 나아갈 것이다. 나 역시 이 낡은 일을 육체에 맡겼다. 너희의 목자는 더 이상 영적인 사람이 아니며 육적인 사역자들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재촉하였습니다. “주님, 이 장엄하고 거대한 성전을 보십시오. 오랜 전통과 역사를 돌아 보십시오. 파멸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미 끝났다는 말씀이신가요?“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그렇다, 끝났다. 이제 옛 것은 끝이 났다. 나의 눈에는 죽었다. 나는 이제 새 일을 행할 것이다.“
자비와 은혜의 화신 되신 주님이 그곳에 서서 말씀하시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제 더 이상 낡은 일은 나와 상관이 없다. 나는 그것을 완전히 황폐화 되도록 버려 둘 것이다. 이제 회복할 기회는 없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새 일의 시작인 오순절로 옮기셨습니다. 옛 것의 복제품이 아닌 새로운 교회를 세우실 준비를 하셨습니다. 기초부터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주안에서 거듭난 새로운 제사장과 백성들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한동안 옛 일이 지리하게 계속될 것입니다. 군중들은 여전히 죽은 의식을 지키기 위해 성전을 향할 것입니다. 목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여전히 강탈할 것이며, 간음자들은 의식적으로 죄를 짓고, 사람들은 우상 숭배에 빠질 것입니다. 옛 일은 점점 메말라 결국 무기력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고 물으셨습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이제 더 이상 그곳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봅시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오늘날의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모든 교파와 운동과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보고 있는 것들이 진실로 교회의 승리이며 그리스도의 흠 없는 신부임을 나타냅니까? 그 모든 것들이 이 잃어 버린 세상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그것이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영이 하실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현 시대의 교회가 낡은 것이 되었습니까? 부패로 인해 어떤 새 일에 자리를 내 주어야 하는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님의 재림 전 마지막 한 시대를 조만간 바꾸실까요? 그가 타락해 버린 것을 버리시고 마지막 영광스런 교회를 세우실까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사야가 말했습니다.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 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이사야 42:9).
오늘날의 교회는 다른 세대가 보지 못한 영광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기에 교회는 회개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오순절날 베드로가 십자가에 대해 설교하던 날 수 천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아왔습니다. 이 새 교회는 모든 인종으로 구성되어 서로 사랑으로 충만한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초기 교회는 복음 전파와 희생 정신, 심지어는 순교에 의해 특징 지워 졌습니다.
이 놀라운 시작은 예레미야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예레미야 2:21). 하지만 주님의 다음 말씀은 종종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2:21).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바르게 심었다. 너는 나의 이름과 나의 본성을 나타내는 나의 것이었다. 하지만 네가 이제 타락으로 돌아서버렸구나.“
무엇이 교회에 이런 타락을 가져왔습니까? 그것은 항상 있어 왔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우상 숭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실 때 우상 숭배에 대해서 언급하셨습니다.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2:11). 우상 숭배는 실로를 황폐케 했으며, 성전을 더럽혔으며, 오늘날의 교회를 부패시켰습니다. 그것은 항상 하나님께서 옛 것을 버리시고 새 일을 시작하시도록 하는 원인이었습니다.
에스겔 14장에, 장로들이 하나님에게 묻기 위해 예언자에게 왔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알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에스겔 14:3). 다르게 표현하면 이렀습니다. “그들은 마치 나를 진정으로 찾는 양 이곳에 왔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 속에 악한 우상을 숨기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대답할 이유가 없도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 가르침은 우상을 하나님의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라고 정의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상에 대한 부분적인 정의입니다. 결국 에스겔에게 온 장로들은 그들의 우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상숭배는 더 깊은 본질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상숭배가 하나님의 집에 만연하더라도 전혀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주님이 장로들에게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에스겔 14:3) 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입니다. 이 거치는 것(올가미)들은 우상을 정당화하는 모든 교리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죄에 대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합니다.
그것은 오늘날 교회에서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있는 첫 번째 우상은 우상숭배나 음란물이나 알코올이 아닙니다. 그것은 훨씬 더 강력한 욕망입니다. 이 우상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공에 대한 야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것을 정당화하는 교리를 가집니다.
성공이라는 우상은 오늘날 하나님의 집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 줍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고결하며,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선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가슴에 야망의 우상을 세워 놓았으며, 결코 그것으로부터 흔들리지 않습니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번영과 성공을 가져오는 바알과 몰렉 배후에 있는 영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 영은 전세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오염시켰습니다. 이는 자신을 축복의 영으로 나타내지만, 교회를 위해 예정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변질시킨 영입니다. 그래서 수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파괴 시키고 있습니다.
이 영은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을 풍미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신조 중 하나는 사회가 여러분의 목적과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여러분의 성공과 인정 받음은 세상의 기준에 의해 판단된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자신의 경력과 재산과 소득으로 규정합니다.
현재 포스트모더니즘 신학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스며들고 있습니다. 목사와 전도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성공적인지를 결정하는 그에 걸맞은 것들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교회 사역의 성공이 많은 출석 교인, 큰 건물 그리고 거액의 예산을 의미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역자들이 자신들과 회중들에게 이러한 것들을 성취하도록 몰아가고 있는 이유입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데려갈 그의 신부가 아닙니다. 이 포스트모더니즘적이고, 물질적이며, 육체 지향적인 조직은 옛 것으로 자라났으며 타락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죽음에 직면해 있습니다.
전세계에 있는 많은 젊은 목사들이 이를 감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논쟁과 교파의 내분으로 얼룩진 낡은 것들을 겪어왔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것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외적 규모와 명성의 추구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대신 그들은 그리스도 중심으로, 하나님을 구하는 것으로, 그리고 진리의 배고픔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교회에서 행하시는 새 일이란 무엇입니까?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이사야 42:9).
하나님께서는 곧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새 일은 너무나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행해 이전과는 결코 다른 찬양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항해하는 자와 바다 가운데 만물과 섬들과 그 거민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42:10).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온 세계의 나의 백성들아 나의 찬송을 노래하라. 바다의 항해하는 자들로부터, 모든 민족의 백성들로부터, 지상의 모든 땅들로부터 나로 새 노래를 듣게 하라.”
이와 같은 마지막 시대에 사탄은 분을 품고 땅으로 내려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계시록 12:12). 그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는 엄청난 분노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교회에 사악한 것들로 넘쳐나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언하셨습니다. “내 백성은 유다의 사자가 하늘의 권능을 가지고 내려오고 있음을 알지어다. 구원이 시온에 이르고 있도다”
사탄이 교회를 통제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유린하도록 하나님이 허용하실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마십시오. 지옥의 문은 그리스도의 몸에 대항해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 순간에도 그의 백성들을 만나시러 시온의 길로 오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가 소돔에서 행하셨듯이, 주님은 정결을 위해 오시고 계십니다. 이 정화의 시간은 그의 교회와 함께 시작될 것입니다. 바로 지금 주님은 그의 집에 있는 쭉정이를 불사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용사 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이사야 42:13).
왜 주님은 강력한 포효와 함께 오십니까? 그가 무엇을 외치실까요? 그는 그의 백성들에 대한 질투로 탄식하실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의 주님은 지금 그의 교회에 질투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그의 질투의 외침이십니다. “내가 오래 동안 고요히 하며 잠잠하여 참았으나 이제는 내가 해산하는 여인 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42:14).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왜 산고를 겪는 여인 같이 부르짖으십니까? 주님은 지금 새로운 무엇인가를 해산하려 하심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사탄이 광분해서 무리들을 기만하고 있는 동안,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새로운, 거룩한 것이 사탄의 코 밑에서 해산되고 있다. 이는 그가 미혹할 수 없는 한 교회이다. 그것은 흠과 티가 없는 승리하는 교회이다.”
지금까지 주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분은 거짓 교리와 거짓 예언, 그리고 양의 탈을 쓴 이리들이 그리스도의 몸에 있는 무리들을 파멸시키시는 동안에도 진노를 참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목자들이 나의 집을 악의 소굴로 만들지만 나는 침묵하였었다. 물질주의의 설교자들이 가증스러운 교리로 전세계의 나의 교회들을 타락시켰지만, 여전히 나는 잠잠하였었다. 거대한 교회들이 그들의 회중들로부터 십자가의 거치는 것들을 제거하는 동안에도 나는 침묵하였다. 자기 만족에 빠진 목자들이 나의 거룩한 집으로 코미디언과 연예인들이 가볍고 경박한 것들을 가져오는 것을 허용할 때에도 나는 참았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나의 노가 격발되었다. 나의 신부를 데리러 오기 전에 그것을 정결케 하기 위해 내가 나의 집으로 가고 있다. 예비하라. 내가 거룩한 질투심으로 너희에게 가고 있다. 나는 이 모든 거짓 교리들을 파괴할 것이다. 나는 나의 설교들을 부풀린 모든 강도와 도적들을 파탄시킬 것이다. 나는 그들의 모든 근원을 메마르게 할 것이며 자금의 흐름을 말릴 것이다.”
“내가 큰 산과 작은 산을 황무케 하며 그 초목을 마르게 하며 강들로 섬이 되게 하며 못들을 마르게 할 것이며... 조각한 우상을 의뢰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이사야 42:15,17).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서 행하시는 새 일입니다. 그가 말씀하십니다. “나는 육체적이고, 거짓되고 물질적인 모든 사역들을 파괴하고 불태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마음을 쫓는 목자들과 나를 아는 신실한 종들을 일으킬 것이다. 나는 모든 거짓 복음과 혼란을 파괴하며 모든 거짓 선생들로 수치를 당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거짓 교리에 미혹된 수 많은 진실한 나의 백성들은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더 낳은 것을 알지 못했을 따름이다. 이제 그들은 나의 순전한 복음에 귀 기울일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할 때 그들은 회개하며 그들을 타락으로 이끈 얕고 경박한 복음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나는 그들을 진리로 인도할 것이다.”
“내가 소경을 그들의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의 알지 못하는 첩경으로 인도하며 흑암으로 그 앞에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42:16).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이제 우리는 이사야가 왜 예언했는지 알게 됩니다. “광야와 거기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의 거하는 촌락들은 소리를 높이라 셀라의 거민들은 노래하며 산 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선전할찌어다” (42:11-12).
사랑하는 성직자들이여,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 새로운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모든 우상들을 버리고 셀라이신(역자주: 구원의 바위)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하도록 하시기 위해 다시 한번 그들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셀라의 거민들은 노래하라!”라는 그의 외침에 순종하실 것을 강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