얍 복 강

얍복! 얍복강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아무 의미 없는 곳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말씀을 읽은 후에는 여러분의 영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얍복강은 야곱이 주님과 씨름하였던 곳입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주님께 완전히 항복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새로운 성품과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끝까지 쥐고 있던 우상을 던져버리고 그의 생애 가장 위대한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밤에 일어나 얍복 나루를 건널쌔"(창세기 32:22).

얍복이란 건너가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비우고 쏟아 붓기 위한 싸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얍복이라는 곳에서 얼마나 영광스러운 진리가 드러나는지 모릅니다! 얍복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모든 면에서 필요한 말씀입니다. 얍복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죄를 극복할 능력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는 곳입니다. 얍복은 삶과 죽음의 위험, 완전한 항복으로 이끄는 위험을 상징합니다.

얍복에 이르러야만 자아와 죄에 대한 영광스러운 승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끝장을 봐야 할 때가 옵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을 직시하고 모든 악의 소욕과 이기적 야망을 비워야 합니다.

과거에 성도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인생에 두 번의 도하가 있다고 배워 왔습니다. 홍해와 요단강이 그것입니다. 홍해를 건너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출발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받는 것을 상징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집트에서 나오나 약속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불신, 두려움, 혼돈의 광야에서 꿈쩍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떠나지만 주님의 기쁨을 맛보지 못합니다.

또 다른 도하가 필요합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그것입니다! 요단강은 주님과 동행하겠다는 헌신을 의미합니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 성경을 읽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찬양의 삶으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약속의 땅은 성령의 충만, 즉 성령 안에서, 성령과 함께 거하는 세례를 의미합니다.

그게 다입니까? 약속의 땅?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영적 가나안? 구원받고, 세례를 받고 성령으로 충만한 것?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유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진정 주기 원하셨던 안식은 맛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았던 이 백성들은 여전히 마음에 죄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숨겨진 정욕과 우상숭배를 고수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사실이 해당된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지 모르겠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성령 충만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도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안식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평안은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깨어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도다"(히브리서 3:19-4:9).

구원받고, 성령 충만하며, 하나님의 사역에 전적으로 헌신하면서도 여전히 숨겨진 죄에 매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고, 기적을 행하며, 훌륭한 일을 행하고, 선악을 분별하는 등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하면서도 여전히 죄에 묶인 자일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비밀스런 죄의 짐을 지거나 죄에 압도되어 있는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온전한 승리와 떠나지 않는 죄로부터의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헌신된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습관적인 죄와 싸우나 늘 패배하곤 합니다. 그들은 마약, 알코올, 섹스 중독 등과 싸웁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 이러한 딱 한가지가 그들을 괴롭힙니다. 그들은 그것을 미워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죄를 행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포기하거나 세상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버릴 수 없을 것 같은 우상 하나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오, 복음을 위한 사역자들을 포함해서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죄와 싸우는 하나님의 남종과 여종들! 그들은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그들은 한번도 세상의 영역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충만을 갈망합니다. 그들은 거룩을 소망하며 부르짖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헌신된 지존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여전히 이 한가지가 있습니다. 이 떠나지 않는 문제. 이 작은 우상!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근심하고 눈물짓게 만듭니다. 그들은 죄와 정죄감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그들은 무기력해지고, 무가치하다고 느끼며 혼동스러워 합니다. 그들은 금식하고 기도하며 맹세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갑자기 죄에 압도되어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같이 되고 맙니다.

여러 해 동안 저는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주제로 한 신학과 씨름해 왔습니다! 저는 죄가 없는 완벽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죄의 노예가 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화의 원리에 대해서 저보다 많이 연구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거룩에 관한 책을 읽고 연구했습니다.

저는 지구상에서 가장 추악한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해답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마약, 알코올, 폭력, 흡연, 도박, 부정한 성 관계, 그 밖의 다양한 중독과 관련한 죄들을 극복할 승리를 얻고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간단하고 명료한 말씀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제게 얍복강을 보여주시고 나서야 저는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역자들을 포함해서 몰래 정사를 벌이는 그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결혼 생활을 포기하고 자신을 더 기쁘게 해줄 다른 사람을 찾기 원하는 부부는 어떻습니까? 흔히 그들은 자신들의 비밀스런 정사를 변명하기 위해 집안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형편없는지에 관해 얘기할 때 거짓말을 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 열중해 있어서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성적 욕망, 간음과 간통이 오늘날 마치 흑사병처럼 교회를 휩쓸고 있습니다. 이러한 압도적인 정욕을 제어할 승리는 없는 것입니까?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항상 죄의 노예로서의 생활을 겪어야만 하는 것입니까? 완전한 승리의 자리는 없는 것입니까? 저는 유혹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욕에 굴복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 세 번째 건너야 할 강이 있습니다. 얍복강입니다!

얍복강은 요단강의 지류입니다. 그곳은 인적이 드문 곳입니다. 우리의 얍복은 혼자서 직면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애굽을 떠나는 수많은 능력의 구원받은 자들과 함께 홍해를 건널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방에 승전가를 부르는 주님의 군대와 함께 요단강을 건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얍복강은 혼자 건너야 합니다! 상담해 줄 사람, 친구, 도와 줄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여러분 개인의 전쟁입니다. 여러분과 주님 둘 사이에 말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창세기 32:24)

얍복은 우리 안에 있는 야곱이 최후의 죽음의 결정타를 맞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 뿐 아니라 우리의 성품까지도 다루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괴롭고 절망적인 상황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궁지에 몰아 넣으셨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야곱은 그의 유산을 받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가 장자권을 속여 빼앗은 형 에서는 약 400명이나 되는 군대를 이끌고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여러모로 성숙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자상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께 순종했으며 집으로 돌아가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는 진리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겸손했으며 기도하는 자였습니다. 그의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창세기 32:10).

그러나 이 겸손하고, 순종하며, 기도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진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종은 타협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즉 문제를 피하기 위하여 위험한 힘에 굴복함을 의미합니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얻으려 하는 평화는 타협을 포함하게 되는 법입니다!

위기의 때에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그는 천사를 이용했습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내려 했습니다. 그는 그의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한 떼를 앞세워 보냈습니다. 그는 에서에게 끊임없이 염소, 낙타, 소, 양, 나귀등과 같은 선물로 포격을 할 참이었습니다.

"내가 형의 감정을 푼 후에"(20절).

유화정책(Appeasement)! 그것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빨려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무기력한 것을 두려워해서 위험한 힘에 굴복하고 있습니다. 요즘 이러한 얘기를 어디에서나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쩔 수가 없어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나는 내 죄를 증오해요.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거듭해도 결국은 굴복하고 실패하게 돼요!

그래서 점점 더 우리는 달래려고(appease) 합니다! 죄를 짓고 자백하고, 울고 자백하고, 빠져나갈 길을 생각해 내려 합니다. 아, 천사들, 계략, 정당화, 변명, 계획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모든 정욕과 대항해서는 무기력해 보입니다.

순종! 기도! 진리를 구함! 겸손! 사랑! 온유! 하나님을 두려워함! 그러나 여전히 옥의 티가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가슴 깊은 곳에는 비밀스런 저항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양보(appeasement)와 계획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이 우상이 남아서 완전히 항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직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주권아래 있지 않은 것입니다.

얍복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종교적이면서도 전혀 영적(spiritual)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매우 신앙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야곱이 그의 백성중에 아내를 맞이하기 위하여 밧단아람으로 가는 도중 그는 놀라운 신앙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창세기 28:12).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축복의 약속이었습니다.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13, 14절).

"야곱은 외쳤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16, 17절).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창세기 28:20-22).

이런 야곱의 계약이 친숙하게 들리지 않으십니까? 나를 축복하소서, 주님! 제 모든 일에 형통하게 하여 주옵소서! 제게 먹을 것을 많이 주옵소서! 저를 돌보아 주시옵소서! 그러면 제가 주를 섬기겠습니다! 그러시면 십일조를 내겠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도록 제게 주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계시고 천국이 열려 있습니다!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얼마나 초자연적인, 신앙적인 경험입니까! 그러나 이 장면을 보고 야곱이 생각한 것은 고작 땅, 먹을 것, 의복, 부유함 그리고 만사형통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신앙적 경험이었습니다.

벧엘은 우리 시대에 인기 있는 신앙입니다. 야곱과 같이 우리의 탐욕스런 영혼은 하나님의 약속을 물질주의적으로 해석합니다. 우리는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더럽히기까지 합니다. 매우 경건하게 들리는 말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흘린 피의 능력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바는 슬프게도 그리스도의 희생이 진정 성취한 것을 오역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보이는 것만을 얻습니다. 그들에게 구속은 단지 건강, 부, 축복, 그리고 가난의 저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할 따름입니다. 그들의 눈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를 정복한 그분의 능력! 희생, 고난, 주님나라의 지상 임재를 위한 섬김의 자유! 필요하다면 고난을 견디는 것, 모든 것을 잃는 고통을 감수하는 것 그리고 영원히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는 것 말입니다!

벧엘에서 경배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무엇입니까? 벧엘의 약속만을 주장하며 벧엘에서 옴짝달싹 안하고 있는 목사님들과 교사들은 무엇이지요?

저는 그들을 신앙인(religious people)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이들은 신앙심이 매우 깊을 수도 있습니다. 야곱처럼 그들은 위대한 계시를 받거나, 천사를 보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가 아직도 자리잡고 있는 벧엘은 신앙의 처소(a place of religion)이지 진정한 영성(spirituality)은 아닙니다. 그것은 부분적인 계시일 따름입니다. 벧엘은 모든 축복을 다루는 반면 깊은 내면의 싸움은 무시합니다! 그곳은 야곱의 본성은 다루지 않는 주님의 임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얍복에서만 일어납니다.

얍복은 모든 끊어지지 않는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필사적인 단계에 이르러야만 얍복에 대한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아의 끝까지 다다라야 합니다. 여러분의 죄의 짐이 여러분을 삶과 죽음의 자리로까지 몰고 가야만 합니다.

야곱은 얼마나 큰 시련에 처했습니까! 한편에서는 에서가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반대편에는 주님과 수많은 천국의 증인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완전한 벼랑 끝이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는 죽은목숨이었습니다. 그의 죄가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그는 형을 속이고 도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교활한 속임수에도 불구하고 목숨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전처럼은 단 하루라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습니 다.

야곱은 어쩔 수 없이 주님의 위대한 임재 앞에 자신을 드러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어떤 자였는가 자신을 살펴봐야 했습니다! 밤새도록 그 전투는 계속되었습니다. 이번엔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유롭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주님과 세상을 눈으로 보기 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정직하고 경건하다는 것을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책망이 제거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는 구원을 원했습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창세기 32:27).

야곱은 자기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발꿈치를 잡은 자, 자기형과 자신을 속이고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으로부터 그것을 숨기려고 하는 자. 주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네가 어떠한 자가 되었는지 너 자신을 바라보아라! 이제 변명은 소용없다! 인생에 한번은 현실을 직면해라! 진리를 대하라. 목숨을 걸고 정직하라. 그렇지 않으면 승리는 없을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모든 억눌렸던 두려움과 고백이 나옵니다.

오, 주님! 저는 사기꾼입니다! 저는 겉으로는 신앙심 깊은 자였지만 안으로는 사기꾼입니다! 저는 속이는 자입니다! 저는 너무 오랫동안 불장난을 해왔습니다! 저는 제가 한 짓을 변명하고 저의 죄들을 정당화 해 왔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오, 주님!

얍복에서의 최후 사선을 직면하지 않고는 여러분을 끝까지 따라다니는 어떠한 죄도 이겨낼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결국 여러분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며 죄가 드러날 때나 심판의 때에 괜찮을 사람이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그 사랑으로 인해 완전히 순종할 마지막 기회, 마감시한을 주셔야만 한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거두어지거나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제한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의 삯을 더 이상 쌓아두고만 계실 수 없는 때가 온다는 뜻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당신의 죄는 반드시 당신의 본성을 드러낼 것입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거짓말로 쌓아 온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직면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았던지, 얼마나 기름 부음을 받았던지, 얼마나 위대한 일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었던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죄를 짓도록 내버려두는 허가장은 발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순종하든지 폭로되든지 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여러분이 심은 것을 거둘 것입니다.

진리를 정면으로 대하십시오! 모든 추한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상세히 고백하십시오! 오, 주님, 저는 간음한 자입니다. 저는 길거리에서 호객하는 매춘부나 동성연애자와 다를 바 없는 자입니다! 저는 당신의 교회에서 가장 추한 거짓말쟁이입니다! 저는 가족들을 속였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제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을 압니다. 저는 제가 하고있는 것에 대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주님, 이 죄를 취하소서! 지금 가져가시옵소서! 이 끔찍한 짐을 하루라도 더 지지 않도록 하소서! 저를 자유케 하소서! 저는 연극을 하는데 지쳤습니다!

얍복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본성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를 따라다니는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세기 32:28).

새로운 성품을 통한 이기는 능력! 이긴다는 뜻은 손을 높이 올리다, 승리, 우세함을 얻다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승리가 자신의 순종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그의 항복을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단순히 우리가 몇몇 죄들만을 정복하는 것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순결한 마음과 깨끗한 손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기 원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성품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진리를 정면으로 대하는 필사적인 하루 밤만 보내면 됩니다. 옛 성품과의 처절한 철야 전투 말입니다! 야곱은 그의 육체와 영혼에 심오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는 주님과 끝까지 담판을 지었고 승리했습니다. 주님은 그의 절망을 보셨고 그의 호소를 들으시고 그를 만지셨습니다! 주님은 일부러 그를 약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환도뼈가 부러졌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실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기적 중의 하나는 우리의 모든 인간적 노력을 마비시키고 우리로 완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얍복에서 겸손하여지고 발을 절며 외칠 것입니다. 오, 주님, 완전히 항복합니다. 제 모든 짐을 내려놓습니다. 나의 우상은 짓밟혔습니다. 그러나 저는 초자연적인 도움 없이는 계속해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지금 이 완전한 순종의 자리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이제 제 헌신을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지켜주옵소서. 나로 당신의 완전한 뜻을 품으며 행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자신의 간사함을 제거하는 자들에게만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간사란 속임, 부정직, 비밀스런 죄입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나다나엘에게 하신 영광스러운 약속을 들어보십시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요한복음 1:47-51).

나다나엘만이 이 영광스러운 약속을 받았습니다. 나다나엘, 너에게는 속임이나 정직하지 않은 것이 없다. 너는 열린 책이라. 숨겨진 죄의 역사가 없구나! 너의 삶에 거치는 것이 없구나. 너에게 하늘이 열릴 것이라! 너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리라. 완전한 계시가 너의 것이라. 너에게는 간사가 없기 때문이라!

우리 주님은 처절하게 주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여시기를,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를 갈망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간사함이 그것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얍복이 그렇게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마지막 남은 간사, 속임, 부정직의 잔재를 내려놓을 곳 말입니다! 그러면 하늘이 우리에게 열릴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주님의 얼굴을 숨기는 것은 진정 우리의 죄입니다.

야곱은 얍복을 브니엘이라 했습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창세기 32:30).

야곱은 이제 영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물질적 축복, 땅, 먹을 것, 의복, 성공은 더 이상 대화의 주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뵈었고 주님의 만지심을 받았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약대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입니다.

하늘이 다시 한번 열렸습니다.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사다리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 열린 하늘의 가장 깊은 의미를 이해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아감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하늘의 처소에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형용할 수 없는 기쁨. 주님 임재의 영광. 주님의 목소리. 이제 모든 영적인 가치들 뿐입니다!

야곱은 20년이 넘는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열린 하늘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형 에서와 삼촌 라반과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하늘은 그에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의 간사함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도 소중한 세월을 허비했다는 것을 압니다. 그 당시 때때로 천국은 제게 마치 놋쇠 같았습니다. 제 내면의 우상, 저의 굴복하지 않은 간사함이 하늘을 닫았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풍성한 계시를 차단했습니다. 저는 아주 부분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얍복에서 주님은 저의 울음소리를 들으셨고 저를 구원하셨습니다! 저는 완전히 항복하여 주님을 따르기로 헌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때 하늘이 제게 다시 열렸습니다! 저는 여전히 유혹을 당합니다. 때로는 쓰러집니다. 그러나 저는 순종으로 다시 하늘이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한복음 7:17).

여러분에게 하늘이 열려있습니까? 주님께서 진리와 거룩함 가운데 자신을 여러분에게 드러내주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여러분은 우상에 집착함으로 여러분 스스로 천국문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닫고 있을 것입니다. 비밀스런 죄가 여러분의 영적 무미건조함이나 소경됨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순결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 때에야 비로써 교회 안에 사랑과 연합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심판 받을 것입니다! 심판은 주님의 집에서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는 얍복으로 인도되고 있습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브리서 10:26-31).

여러분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기 전에 얍복으로 가십시오! 얍복에서 여러분을 심판하십시오. 그러면 심판받지 않을 것입니다! 순종에 관하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로마서 1:18).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여호수아 7:12).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린도후서 7:1).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야고보서 4:8).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야고보서 1:1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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