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입은자가 어찌 자기 형제를 가혹하게 대할 수 있습니까?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 6:14-15). 예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기에 우리를 용서하여주셨고 또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에게도 형제,자매를 향하여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명령에대해 언급하며 이같이 권면합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 3:13) 그는 어떻게 우리가 이 명령에 순종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해 세세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3:12-14).
"서로 용납하라" 란 말은 무슨 말일까요? 킹제임스번역본을 읽어보면 "참아라"라고 나오고 그리스 단어는 "참다. 견디다." 를 뜻합니다. 이는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견디라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의 실패를 용납하고, 절대 이해힐수 없는 방식을 견디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의 설교 스케쥴이 있었던 해외 컨퍼런스에서 여러 유명 사역자들이 한 특정 사역자와 협력하지말것을 경고 했습니다. 그들의 말은 그가 기묘한 방식의 예배와 그밖에도 그들이 보기에 바보스러운 것에 취해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그 목사님을 만나보니 전 그안에 그리스도가 계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부드럽고 자애로우며 온화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들 여러 다른 사역자들이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를 "참고, 용납하기를" 거부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단지 방식의 차이일뿐인데 극복하려하지 않았던 것이죠.
친히 용서를 입은 하나님의 종이 어찌 자기 형제를 가혹하게 대하고 그와 교제하기를 사절할 수 있습니까? 제 생각엔 이것은 우리로 다시 하나님의 긍휼과 선하심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몸부림치던 원점으로 돌아가게 만들수 있는 덫같습니다.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빠질 수 있는 덫이죠. 우린 주님을 믿기위해 열심으로 구해야 합니다. 인내와 긍휼 그리고 다른이들을 향한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