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목적

David Wilkerson

다윗은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시편 16:1). 다윗이 이 구절에서 사용한 "보호"라는 히브리어 단어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사실상 '보호'라는 단어는 "나의 사방에 가시 울타리를 치셔서 나를 지키소서.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소서. 나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 나의 모든 발걸음을 지켜보시옵소서"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를 지키신다는 것을 완전히 믿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다윗이 모든 행동과 인생의 길 가운데서 주님의 도움과 보호를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축복을 받은 자, 다윗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시편 121:4-7).

'보호'라는 똑 같은 히브리 단어가 이 구절에서도 나옵니다. 다시 한 번 다윗은 주님이 쳐 주시는 보호의 울타리,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보호의 벽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어디로 가든지 당신을 지켜보고 계십니다"라는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거하는 모든 장소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직장과, 학교와, 우리가 쇼핑을 하는 중에도, 운전을 하는 중에도, 버스 안, 지하철 안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모든 상황가운데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악으로부터 지켜 보호하고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도둑으로부터, 폭력배로부터, 살인자로부터, 강간범으로부터, 테러리스트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탄저균과 천연두를 비롯해, 가능한 모든 생화학 무기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고 계십니다. 달리 말하자면 주님은 우리의 모든 터전을 덮고 계십니다. 주님은 주님의 백성들을 향해 계획된 모든 무기들을 꺾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마도 최근 몇 주 동안 여러분 모두가 급작스러운 테러공격이나 생화학 무기로 인한 질병의 확산을 걱정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모든 것 위에 우리에게 확실한 약속을 주십니다.

"여호와여 악인에게서 나를 건지시며 강포한 자에게서 나를 보전하소서 저희가 중심에 해하기를 꾀하고 싸우기 위하여 매일 모이오며 뱀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여호와여 나를 지키사 악인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나를 보전하사 강포한 자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올무와 줄을 놓으며 길 곁에 그물을 치며 함정을 두었나이다…"

"여호와여 악인의 소원을 허락지 마시며 그 악한 꾀를 이루지 못하게 하소서…나를 에우는 자가 그 머리를 들 때에 저희 입술의 해가 저희를 덮게 하소서 뜨거운 숯불이 저희에게 떨어지게 하시며 불 가운데와 깊은 웅덩이에 저희로 빠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소서 뜨거운 숯불이 저희에게 떨어지게 하시며 불 가운데와 깊은 웅덩이에 저희로 빠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소서 악담하는 자는 세상에서 굳게 서지 못하며 강포한 자에게는 재앙이 따라서 패망케 하리이다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신원 하시며 궁핍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리이다 진실로 의인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가 주의 앞에 거하리이다" (시편 140:1-13)

위의 시편의 첫 부분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강포한 자로부터 보호해주시기를 요청했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사용하는 '보호'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호'라는 단어의 뜻은 감추어진 것, 비밀스러운 것으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나는 너의 모든 삶의 영역, 네가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감싸고 있단다. 너는 내 안에서 안식하거나."

주님께서 여러분을 지키시고 보호하고 계시는 것을 믿습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을 교만하고 포악하며 사악한 자들의 궤계로부터 지키시고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그들은 여러분을 향해 악독한 계획을 고안해 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해악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뜨거운 숯불이 저희에게 떨어지게 하시며 불 가운데와 깊은 웅덩이에 저희로 빠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다윗이 기도했던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시편 140:10).

여러분을 지키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망을 인정하기 어려우시다면 시편 27편을 읽어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영히 거하리니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시편 37-23-28) "여호와는 저를 그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치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도다 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찌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결국은 끊어질 것이나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 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 (시편 37:33-40).

욥은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능력을 증거 했습니다. 저는 욥이 견뎌야 했던 것과 같은 상황을 다 겪어본 사람을 평생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욥은 가족과 자신의 소유와 건강, 명예를 다 잃었습니다. 누가 그토록 극심한 재앙을 경험한 사람과 논쟁을 벌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 즉 "사람을 보호하시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시시때때로 우리의 하나님은 스스로 그의 백성을 지키시는 자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목적으로,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셨을까요? 왜 주님은 우리를 지키시는데 그토록 여념이 없으실까요? 우리는 모세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지켜 보호하려) 하심이라" (신명기 6:24). 모세는 한 가지 이유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한가지 이유란 그들을 지키고 보존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기 원하시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기 위해 사용하신 온갖 방법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을 때 열 가지 재앙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홍해에서 바로의 군대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광야가운데서 독사에 물렸을 때 그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그들의 자손에게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능력을 증거 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우리의 대적으로부터 구원하셨단다. 우리에게 물과 양식을 주시고 우리의 의복이 닳지 않게 하셨지. 주님은 이스라엘을 모든 것으로부터 지키고 보호하셨단다."

그런데 이것이 이스라엘이 증거한 전부였습니까? 이 백성들이 지키심과 보호를 받고 결국에는 광야가운데서 죽었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이 단지 일생동안 그 백성들이 안전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지키고 보존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하라고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모세는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라고 선언했습니다 (신명기 6:23).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애굽에서 구해내신 기적적인 방법들을 보십시오. 그 모든 기적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을 택하시고 태초부터 특별한 자로 여러분을 인치신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하나님은 왜 여러분을 노예의 신분에서 건지셨습니까? 왜 주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을 만한 때에도 여러분을 축복하셨습니까?"

"단지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필요를 채우셨다'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장작불을 피워놓고 모여 앉아 자손들에게 옛날에 이런저런 기적이 있었다라고 이야기나 해주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베푸신 일들은 엄청난 일들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는 끝이 없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시기 위해 여러분을 지키셨습니다. 주님은 그 모든 기적에 비할 수 없는 여러분의 삶 속에 무언가를 성취하시기 원하십니다."

저는 주님과 몇 년만이라도 동행해 본 그리스도인 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겪은 광야에 관해 한 권 쯤의 책은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최근에 '비극을 통한 승리'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 책은 말로 할 수 없는 시련을 겪었던 성도들의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어떤 시험을 여러분은 견뎌내셨습니까? 여러분은 얼마나 큰 재앙과 혹은 죽음을 직면해야 했습니까?

과거를 회상해 볼 때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십시오. "그 모든 일이 어떤 의미가 있지?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신 이유가 뭐지? 왜 나는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자가 되지 않았지? 정신이 나가서 길거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내가 달리 사는 이유가 뭐지? 고통대신에 주님의 평안을 누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주님은 나에게 그토록 선하셨는가?"를 물어보십시오.

주님은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사방에 벽을 세우셨습니다. 그 목적이란 그들을 아주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 자신들이 싸운 전투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잠자리에 누울 수 있는 운명의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가나안에 있는 악한 나라들을 심판하시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보호하신 것은 이러한 나라들과의 전쟁을 준비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도 하나님께서는 벌떼의 재앙을 앞서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제 앞에서 쫓아내리라" (출애굽기 23:28).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너희는 지금까지 위기의 때에 용사가 되도록 하기 위해 보호하심을 받았다. 나의 뜻은 너희들이 정복자로 사는 것이고 너희들이 모든 임무를 완수한 다음에 죽는 것이다. 나는 너희가 끝까지 처절한 전투를 승리하는 유능한 군사가 되도록 너희를 건져내었다."

예수님께서도 한가지 특별한 목적으로 인해 아버지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이사야는 그리스도가 모욕을 당하고 위협을 받을 것이라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한가지 특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 (이사야 49:8).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전능한 보호의 영이 그리스도를 매 순간마다 지켜보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은 시시각각 예수님께서 해를 입지 않으시도록 신실하게 보호하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 애썼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한번은 산꼭대기로 예수님을 데려가서는 절벽아래로 예수님을 던지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이 개입하셨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사탄은 예수님이 성전 꼭대기에서 스스로 뛰어내리도록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다시 한번 그리스도를 보호하셨고 예수님께 유혹을 저항할 힘을 주시며 예수님을 돌볼 천사들을 보내셨습니다.

이 모든 사건은 한가지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언급하였습니다. "내가 잡혀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자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49:9-10).

예수님은 아버지께 대답하셨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제가 어둠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다가가겠습니다. 그래서 길을 잃은 그들에게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겠습니다." 예수님을 보호하신 것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였습니다. 사단의 능력을 파하며, 백성들을 자유케 하고, 갇힌 자를 놓아주며, 어둠가운데 빛을 전하는 것 말입니다. 성령의 보호하시는 능력을 통해서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성취하셨습니다.

요셉은 한가지 특별한 목적을 위해 보호하심을 받은 가장 전형적인 사람입니다.

요셉이 자신의 형들과 대면하게 되었을 때는 엄청난 축복과 성취를 이루었을 때였습니다. 기근이 땅을 덮었고 요셉의 형들은 곡식을 찾아 애굽으로 왔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보고는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요셉이 방성대곡하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창세기 45:2, 4).

요셉은 형들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보십시오. "당신들이 나를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세기 45:5). 요셉은 "형들은 비록 내게 잘못을 행했지만 저는 이 모든 일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주님께서 형들을 구원하시려고 저를 준비시키시고 계셨던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한 사람을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모든 세대 가운데서 주님은 요셉과 같은 자들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헌신된 종들로 수년간에 걸친 고통과 시험을 지나가게 하셔서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시고 강하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수많은 사단의 덫에서 건져내십니다. 하지만 요셉과 같은 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거의 경험하지 않는 방법으로 시험을 받습니다. 그들은 끊임없는 의심, 밀려오는 공포, 불 같은 유혹에 직면합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을 받습니다. 아마도 이 시험이 가장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요셉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을 받았습니까? 그가 겪은 모든 시험을 통해서 요셉은 자신이 의로운 자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의 시험은 더욱 더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분명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님, 이 모든 시험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과 전혀 일치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완전히 반대됩니다."

요셉이 겪은 가장 큰 시험은 형제들에게 배신 당했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당하게 감옥에 갇혀야 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감옥에서 도와 주었던 자가 자신을 잊어버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겪었던 가장 힘든 시험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되는 혼돈이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 그의 형제들이 다시 그의 인생에 나타나고 나서야 비로서 요셉은 하나님의 목적에 관해 전체적으로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됩니다. 자신의 인생 행로를 돌아보면서 그는 깨달았습니다. "이제 주님이 그 가운데 계셨었다는 것을 알겠구나. 주님이 그 섭리 가운데 계심으로 내가 겪었던 모든 고통스럽고 외로운 순간 순간들이 진정 가치 있는 것이었구나." 요셉은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고서 그의 과거에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오늘날도 요셉과 같은 자를 거느리고 계십니다. 그들은 주님이 만지시고 부르신 경건한 남종과 여종들입니다. 그들은 명예나 돈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여하신 소명을 이루고 죽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의 일생이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중요하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도인들 중 많은 자들은 요셉이 있었던 것과 똑 같은 어두운 지하 감옥 가운데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의 삶은 사방이 고통과 고난으로 가득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는 시험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요셉과 같이 그들은 항변합니다. "주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죠? 말이 되질 않습니다. 제가 원한 것이라고는 당신을 섬기는 것 뿐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 삶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저는 오래 동안 기도하고 금식하며 주님만을 더욱 사랑하기를 바래왔습니다. 이런 일은 저를 향한 당신의 뜻일 리가 없습니다."

저는 이런 유의 고통을 잘 압니다. 여러 해 동안 저희 가정은 끊이지 않는 암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저는 사단이 주는 참소를 그 때마다 계속해서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기도할 때면 마치 머리 위의 하늘이 놋이 되어버린 느낌을 받곤 합니다 (역자 주: 언약을 저버린 자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 - 신명기 28:23). 여러 해를 주님과 동행한 후에야 저는 그 시험가운데서 주님의 손길을 뚜렷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탄이 의도했던 해악을 주님께서 선으로 바꾸셨다고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거룩한 종들 가운데 많은 자들이 오늘날 갇힌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은 소망이 없는 것 같은 상황가운데 갇혀 있습니다. 그들은 극심한 유혹과 시험을 받으며 믿음이 아무 소용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최악의 경우 그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영혼을 시험합니다.

고통스럽지만 이러한 종들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밖으로 부르시려고 지정한 때까지 갇혀 있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지금으로서는 그들은 요셉의 부르짖음과 똑같이 부르짖습니다.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창세기 40:14-15). 그들은 외치고 있습니다. "주님, 저는 이 끔찍한 절망의 옥에 갇혀 있습니다.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 제게 긍휼을 베푸시고 저를 이 고통가운데서 건져주세요. 저는 단지 주님을 섬기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가 되기를 원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러한 외침에 대해 전혀 모르신다면 아마도 여러분이 요셉과 같은 자의 부류에 속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한 가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자신을 보호하셨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로 삼으셨나이다" (창세기 45:7-8).

요셉은 고통의 나날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증거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이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환란을 겪게 하신 데는 한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겪어온 이 모든 일들을 통해 오늘날 내가 여기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형님들, 주께서는 저로 하여금 형님들을 섬기라고 저를 준비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하셨던 것과 같이 형님들을 주님의 보호하시는 은혜가운데로 이끄시기 위해 이 모든 일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요셉에게 이 얼마나 큰 계시입니까! 동시에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오셨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를 지키실 것이라는 것,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 뒤에는 주님의 영원하신 목적이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최근 미국에 임한 엄청난 재앙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2001년 9월 11일 이후로 우리 사회는 공포에 휩싸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전례 없이 주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한때는 미지근했던 그리스도인 들도 하나님의 보호 하심에 대한 약속을 붙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 저의 사방에 보호의 울타리를 쳐 주시옵소서. 오늘 저와 동행하시며, 저를 지키시며, 저의 모든 걸음걸음을 지켜봐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대로 행하고 계십니다.

이제 여러분 삶의 길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셔서 여러분을 변화시키신 때부터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건지신 방법들에 관해 여러분이 책 한 권쯤은 쓰고도 남음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위기, 사탄이 쳐놓은 덫, 강력한 유혹 등등 말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자주 이 싸움을 포기하고 싶었습니까? 몇 번이나 정욕과 절망을 선택하고 싶은 기로에서 헤매곤 했습니까?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여러분은 여러 해 동안 세계에서 가장 사악하고 강력한 테러리스트인 사탄의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때때로 여러분은 사탄과 육탄전을 벌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탄은 여러분을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도록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때마다 주님은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여러분은 주님의 보호하시는 능력에 대해 강력한 증거를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 저로 이 인생의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주님의 손길을 내게 두셨습니다. 주님은 제가 멸망 당해 마땅할 때 저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저를 멸망시킬 수 없었다면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제게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하나님은 나를 지키시기에 완전히 신실하십니다."

제가 여러분께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주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지는 때에 왜 당신을 지키시기로 선택하셨습니까? 우리가 눈길을 조금만 돌리면 어디서 건 우리는 삶이 무너진 자, 깨어진 가정, 산산조각난 꿈 등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주님의 구원 하심과 주님이 주시는 자유가운데 여기 서 있습니다. 주님께서 왜 당신을 지키고 보호하셨습니까? 왜 당신의 죄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왜 하나님은 당신을 파멸과 수치로부터 지켜주셨습니까?

여러분을 향한 목적이 있으시기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앞에 그분의 계획을 두셨습니다. 시험을 받고 그 믿음을 확증한 성도만이 그 계획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예수님께서 올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미국과 세계의 현재 상황을 한 번 돌아 보십시오. 무엇이 보이십니까? 저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예언이 우리의 눈앞에서 성취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누가복음 21:25-26).

바울 역시 이 때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데살로니가전서 5:3). 바울은 자만하여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확신하며 "우리는 평화를 이루었어"라고 자랑하며 살아가는 자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들이 가장 안전하다 느끼는 바로 그 순간에 멸망이 임할 것입니다. 갑자기 그들이 간직했던 평화는 사라질 것입니다. 하루 밤 안에 온 나라가 공포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미국은 바울이 이야기하고 있는 갑작스런 파멸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미국은 적국의 공격으로부터 믿을 수 없을 만큼 안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연이어 언급하듯이 "결단코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3). 우리는 예수님과 바울이 이야기한 시대를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날이 올 때까지 살아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요셉과 같은 자들을 그런 위기의 때를 위해 지키시고 보호해 오셨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그들의 영과 혼과 육이 보호하심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 그 모든 것 뒤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은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11). 바울은 "당신들은 믿음의 역사를 이루도록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믿음은 조용한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내는 믿음입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선언했던 것과 같이 "능력의 믿음" 안에서 주님의 보호하심을 받은 모든 성도들이 일어나야 할 때가 왔습니다.

지금은 소극적인 믿음이 필요한 때가 아닙니다. 험한 시험을 견뎌낸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앞으로 나아와야 하는 시기입니다. 우리의 대장께서 우리에게 공포로 가득한 세상가운데 일어서라고 그리고 "능력의 믿음"을 채우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는 요셉이 했던 선언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창세기 45:7).

우리 주님은 911 테러로 인해 놀라시지 않았습니다. 줄곧 주님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요셉과 같은 자들을 준비시켜오시고 계십니다. 주님은 그들로 불과, 홍수와, 질병과, 슬픔과, 유혹과, 두려움을 거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은 능력의 믿음으로 드러났습니다. 지옥의 테러리스트가 떼를 지어 몰려나오는 때에도 하나님의 영은 이 보호하심을 받은 성도들의 군대를 모으고 계십니다. 주님의 영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도록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확신가운데 그들을 내보내고 계십니다. 그들은 바로 이 때, 커다란 위기의 때를 위해 태어났으며 지키심과 보호하심을 받았습니다.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삶을 변화시킬 하나님의 능력과 더불어 개인적인 사역을 위임 받았습니다.

온 세계가 사방에서 밀려오는 슬픔과 더불어 그들이 겪는 재난으로 인해 비틀거릴 때 하나님은 전쟁을 위해 훈련된 신실한 군대를 소집하실 것입니다. 이 헌신된 남종과 여종들은 엄청난 시련을 겪고 확실한 믿음으로 나아온 자들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있습니다. 그런 능력이 대규모로 보여지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아주 단편적인 형태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고요한 영, 찡그린 얼굴이 가득한 가운데 하나의 미소로,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 떨 때 영과 혼과 육의 안식으로 말입니다.

제 아내 그웬은 암과의 투병에 전 생애를 보냈습니다. 그녀는 셀 수 없이 많은 수술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주님께서 그녀를 매 번 건져내신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 메시지를 우편으로 받으시는 분들은 제 아내가 수년동안 겪어야 했던 고난을 잘 아실 것입니다. 또 많은 분들이 비슷한 전쟁을 겪고 있다고 저희에게 편지를 보내시기도 했습니다.

어느날 그웬은 암으로 투병 중인 자매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짧은 사랑과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의 사역은 아주 조용하고 은밀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사역은 능력을 입었습니다. 그 사역이 시험과 고통가운데서 탄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그웬은 답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보내주신 편지에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의 편지가 우리의 마음에 커다란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그웬과 저는 그녀가 한가지 목적을 위해 보호하심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수백명의 자매들이 그녀의 전쟁을 통한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필요는 지금도 막대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삶의 길을 되돌아 볼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어떤 전쟁을 치루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시험가운데서 여러분에게 승리를 주셨습니까? 그것이 아마도 여러분이 앞으로 감당할 여러분의 사역이 무엇인지에 대한 단서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아마도 여러분이 오랜 시간동안 싸워 온 분야에서 여러분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모든 사역은 주님과의 교제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기도가운데 주님을 구하십시오. 주님께 "주님, 이 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십시오. 주께서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요셉과 같은 자 중 한 명으로 오늘날과 같은 위기의 때를 위해 부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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