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재 고난
아마 지금 여러분은 극심한 고난에 고통받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의 뒤에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있는 죄들을 다루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이런 극심한 고통을 겪도록 허락하셨는지 궁금해합니다.
고통의 용광로가 바뀌는 삶의 계시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일이 욥에게 일어났습니다. 고난 속에서 욥은 놀라운 발견을 합니다. 그의 하나님을 아는 순수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정 주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5-6)라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이 고난을 겪었을 때 욥은 적어도 일흔 살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하나님을 알아왔습니다. 주님을 향한 재단 앞에서 많은 시간을 찬양과 경배로 보냈습니다. 오랫동안 주님은 그의 놀라운 방식과 신비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욥은 주님의 위안, 그의 거룩함, 성품, 기질, 진노에 대해 알아왔고 주님의 능력과 지혜의 신비도 배웠습니다.
하지만 상상할 수조차 없는 위기가 왔을 때, 그는 주님을 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희미해진 신학적 용어가 되어버렸습니다. 날마다 삶에서 너무나 큰 부분을 차지했던 주님이 이제는 그가 겪는 삶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갑자기, 주님은 설교 일부이거나 능력이나 생명이 없는 지식으로 전락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이것이 욥의 삶에서 드러나기를 원하셨다고 믿습니다. 우리 사랑의 아버지는 자녀들이 당신을 단순히 예배나 성경공부, 기도 모임에 참여함으로서 아는 것보다 더 깊이 알기를 원하십니다. 가장 치열한 싸움이나 고난이 있는 저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저희가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기를 원하십니다. 죽은 신학의 하나님이 아닌 전능하시고, 가까이에 계시며 손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시는 하늘 아버지로 저희가 그분을 알기를 바라십니다.
현재 저희의 고난은 저희 안에서 이 둘 중의 하나를 열매 맺습니다: 마음이 굳어져서 불신의 벽이 생기거나 저희 삶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영광의 시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