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필요한 마음의 평안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은 마음에 근심을 두고 있으며 두려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공포와 불안과 불면으로 고통 당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같은 절에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여전히 소수의 성도들만이 지속적인 마음의 평안을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평안은 왔다가는 가버리며, 근심과 불안에 다시 빠지며 스트레스로 인해 망가지고 맙니다.
메시아의 오심에 대해 사가랴는 이렇게 예언하였다.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누가복음 1:74-7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신 이유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날들을 통해 그의 평안을 누리며 두려움 없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가 있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마음과 정신의 평안... 우리의 모든 나날! 이 말은 고통과 불안과 시험과 의심의 날들까지 포함합니다. 즉 좋은 날들과 나쁜 날들 모두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노정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항상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가랴는 예수님께 대해 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79절). 그는 예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불안, 공허 혹은 두려움이 아닌 평강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의 탄생 시 천사는 "땅에서는 평화..."라고 노래했습니다. 그의 복음은 평안의 복음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약속 하셨습니다.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6:33).
평안은 복음이 전하고 있는 바입니다. "만유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사도행전 10:36). 게다가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마땅히 섬겨야 함에 있어서 받아들일 만한 길을 요약하였습니다. 바울의 표현에 비추어 여러분의 삶을 측량해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의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로마서 14:16-19).
이 세상에서 우리는 환란과 핍박과 불 같은 시험 - 바울의 표현에 의하면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 - 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5). 우리는 시험을 당하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로를 위하여 고통 받을 것입니다. 역경의 바람이 우리의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의 바위 위에 우리가 세운 믿음의 집을 무너뜨리기 위해 불어올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성령 안에서 충만한 평안과 기쁨의 의로 항상 그를 섬겨야 합니다.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를 들어봅시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 (데살로니가후서 3:16).
모든 환경 가운에서의 평안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상황 속에서 평안을 가지십니까? 여러분들이 깨어있는 동안에 절대적 평안으로 충만하십니까?
평안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내적 만족, 내적 고요함, 마음의 안정, 침착함, 다툼으로부터 자유함, 안식, 방해 받지 않는 영. 저는 내적인 평안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 주변에 있기를 좋아합니다.
애석하게도, 세상에는 이러한 평안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위기의 때에, 많은 성도들은 고요함이나 방해 받지 않는 영에 의해 다스림을 받지 못합니다. 너무나 자주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고통 당하고 염려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지만 그의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는 모든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자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믿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것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극히 소수만이 이러한 믿음의 길에 들어 섰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를 소유한 사람은 소수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요구를 들어보십시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여러분들은 정말로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들고 나갑니까? 때로 저는 무엇을 요청하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그를 사랑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로 나아와 우리의 모든 요구를 그로 알게 하도록 우리를 초청하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할 때 그는 기뻐하십니다.
여러분들의 요청을 알게하는 기도란 기도실에서 기도의 응답을 받아 아픔이나 질병이 떠나거나 어떤 문제가 곧바로 해결 되어 나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주신 그의 평안으로 인해 여러분이 변화된 마음으로 일어서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기도의 밀실에 들어가, 우리의 영혼의 짐을 내려놓고 눈물을 흘리며 우리의 요청을 이뢰면 우리는 평안을 안고 나올 수 있습니다. 질병이 떠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우리는 변화될 것입니다. 다툼, 두려움 그리고 염려는 떠나갈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혼란한 시대에 그러한 평안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요?
1.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 없이는 진정한 평안이 불가능하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에베소서 2:14).
저는 평안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 살고 있는 많은 영혼들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는 평안이 있습니다.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나는 안식을 누립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안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단의 거짓말로 인한 착각입니다. 그것은 실패와 파멸로 향하는 잘못된 평안인 것입니다.
신명기 29장 18-19절에서 우리는 그 마음이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기는 사람들에 대해 읽게 됩니다. 그들 안에 자라고 있는 독초의 뿌리로 인해 성령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죄악의 완고한 길로 돌아갔기 때문에 저주가 그들에게 임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경고의 내용입니다.
"그 열국 중에서 네가 평안함을 얻지 못하며 네 발바닥을 쉴 곳도 얻지 못하고 오직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의 마음으로 떨고 눈으로 쇠하고 정신으로 산란케 하시리니 네 생명이 의심 나는 곳에 달린 것 같아서 주야로 두려워하며 네 생명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 네 마음의 두려움과 눈의 보는 것으로 인하여 아침에는 이르기를 아하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 것이요 저녁에는 이르기를 아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리라" (신명기 28:65-67).
이 저주에 더하여 우상 숭배자들에게 이러한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위로하여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을 강퍅케 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을 멸할지라도 평안하리라 할까 염려함이라" (신명기 29:19).
참 평안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이 주장하는 평안은 거짓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악인은 능히 인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이사야 57:20-21).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이사야 59:8).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이 평안을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오직 화를 더하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29:21).
세상이 다룰 수 없는 것 중 한가지는 고난입니다. 이교들은 고난을 회피할 수 없기 때문에 환영의 세계로 도피함으로써 부인합니다. 그들은 정면으로 대면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교리는 방으로 들어가 명상을 통해 무아경에 빠지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그러한 평안은 단지 하루 이틀 지속될 뿐 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근심과 중압감은 다시 몰려오게 됩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고난의 시간을 통해 그의 몸 된 교회에서 찬송을 받습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에 대해 분명히 승리를 거두는 시간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모든 위기를 정면으로 맞이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고통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에게 넘치는 평안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 땅에서 가장 착각에 빠진 사람들 중 일부는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평안을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릇된 안도감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당신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평안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심령은 평안하십니까?"라고 질문 한다면 대부분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예, 저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평안합니다. 저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예 저는 15년간 평온을 지켜왔습니다." 그에게 어떻게 해서 평안을 얻었는지 묻는다면 이런 대답이 나올지 모릅니다. "여러 해 전에 저는 불안 속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와서 저에게 명상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는 방으로 들어가 주문을 반복해서 외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했으며 영이 저를 신선하고 시원한 물처럼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묻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평안이 샘솟는 그 근원이 무엇습니까? 그것이 참된 것인지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그가 대답합니다. "그것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저는 평화롭고 고요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행복하며 만족합니다. 만약 제가 고통 받게 되면 방으로 들어가 다시 주문을 외울 것입니다. 저는 모든 것들을 비워냅니다."
미국은 현재 동양의 가르침으로 넘쳐 나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평안의 마음을 준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해탈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평안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아지경으로 자신을 내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비움을 주지 않으십니다. 대신 그는 충만을 주십니다. 그는 영원히 흐르며 언제나 신선하며 끊임없이 소생시키는 강 같은 평강을 주십니다.
또 다른 사람이 증언합니다. "저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 제 자신과 가족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변화를 위한 시간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활을 고치고자 결심했습니다. 반복되는 상황들에서 빠져 나와 나쁜 습관들을 버렸으며 선한 일을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예전과는 달라졌습니다. 저는 이 평안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를 기뻐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3:20). 얼마 후 이 사람은 어떤 죄에 빠져 그의 평안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부질없는 꿈이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죄인들이 주장하는 평안은 참 평안이 아니라 감각의 상실입니다. 영적으로 장님입니다. 오직 의로움만이 평안을 낳습니다.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이사야 32:17).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악인이 아닙니다. 저는 악인들이 행하는 것을 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은 정욕이나 술 취함이나 약물중독 이상의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인은 그리스도가 모든 평안의 근원임을 알면서도 그를 거부하고 그의 은사를 부인하는 자입니다. 악은 평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하는 그의 부르심에 대해 저항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완전해 보이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고 남을 속이지도 않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좋은 품성을 소유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등을 돌린다면 구원의 방법을 거부함으로 인해 하나님이 보시기에 여러분은 악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위한 평안은 분명히 없다고 선언하실 것입니다.
2. 참 평안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결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1).
우리의 평안을 위해서는 반드시 기초가 있어야 하는데, 성경은 이것을 의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의롭게 하셨으므로 우리가 평안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주님이 허락하신 이와 같은 크나 큰 평안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의로움을 입었으며, 이것은 우리가 이 굉장한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합니다.
의에는 두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죄들이 씻기어졌다고 말합니다. 어린양의 피로인해 저는 죄들로부터 풀려났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죄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그것들이 더 이상 우리를 결박하지 못합니다.
믿음에 의한 의는 모든 평안의 견고한 기초입니다. 의롭게 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무죄를 선언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그의 빚을 갚으셨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로마서 4:25). 그는 우리가 모든 저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선포하시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하지만 의로움을 입었다는 것은 용서함 받았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것 뿐만 아니라 그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만족을 드리게끔 하셨습니다. 이것이 의의 두 번째 부분입니다. 나는 정결하고 무죄하다고 선언했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성결 하다고 선언했었습니다.
여러분은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죄를 이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기질과 악한 생각들을 극복하고, 모든 악한 말들에서 떠나며 모든 습관을 제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여전히 잘못된 기초를 쌓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평안이 여러분의 노력이나 생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때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 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선한 행위가 저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이 나의 행위에 따라 복 주시기를 기대했습니다.
종종 저는 제가 어떠한 잘못을 범하지 않았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평안을 누릴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며 한 주일을 보내곤 했습니다. 저의 과거를 회상하면 아내에게 자상하였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꾸준히 기도와 말씀 가운데 보냈으며 "하나님 당신의 평안으로 인해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너지는 날이 이르기 전까지는 주님께 늘 감사를 드렸습니다.
저의 평안은 저의 선한 행실이나 악을 물리친 것에 따라 왔다 갔다 합니다. 어떻게 든 온화함이 깨어지면 절망이 찾아오고 평안이 깨어져 버립니다.
어쩌면 여러분도 이러한 고투를 경험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족시키고 그분으로 인해 기쁨을 얻기를 그토록 원하면서도 주님이 이미 당신을 위해 행하신 일들 보다는 여러분이 행한 일들에 대해 너무나 집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판단하고 스스로의 행위에 의한 구원과 평안에 대해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좀더 효과적으로 기도를 했더라면... 더 많은 시간을 성경 읽기에 사용했더라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선을 모두 행했더라면... 하나님이 나에게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 텐데!"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안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충만하다면, 가난하고 주린 사람들을 구제한다면, 부지런하다면, 혹은 모든 악의 모습들을 회피한다면 나는 평안을 누릴 수 있어".
하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평안의 기초에 대해 이해하기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평안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평안은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통해 하나님의 오른편에 여러분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단지 그 이유로 인해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평안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로새서 3:15). 우리가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날 때까지 그분은 우리를 언제나 의롭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 사회에 성도들에게 그릇된 안전을 제시하는 치명적인 교리가 있다는 것을 덧붙여야 겠습니다. 이 가르침은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의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어떻게 살던지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속임, 간음, 경박한 삶 그리고 의지적인 범죄 등 즐거움을 쫓아 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랑합니다. "땀 흘리지 않고 나는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의에 이르렀다. 그의 보혈은 나의 모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들을 덮었다."
이러한 사람들은 속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죄와 배역에 빠지면서 의롭게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겸손히 낮출 때 비로서 주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 덧입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 부활하셨으며, 그는 우리의 의가 되셨습니다. 하지만 용서와 의화(義化)는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지배 하에서 하나님의 통치로 돌아서는 사람들을 위해 베풀어집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회개하기 전에는, 우리가 사악한 길에서 돌아서기 전에는,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기 전에는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다음의 말씀 때문입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사도행정 26:18).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여러분 안에 거룩한 능력을 일어 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그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오도록 초청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분께 받아들여졌음을 압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노하셨다면 왜 그의 보좌로 우리를 초청하셨을까요? 여러분은 좋지 못한 날들로 인해, 성령을 근심케 하는 일들을 행함으로 인해 여러분 자신을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시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주님께 달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 회개합니다. 당신의 피로 저의 모든 부정을 씻어주실 수 있음을 압니다."
아버지는 결코 여러분에게 등을 보이신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분이 그렇게 하셨다고 믿고 있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느날 구원 받았지만 어느날은 구원 받지 못했다고 믿으며 항상 초조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영원한 안전에 대해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영원한 성도에게만 영원한 안전이 있다고 믿습니다. 즉 여러분이 주님과 더불어 신실하게 동행하며 여러분의 삶 속에 언제나 전심으로 그를 사랑하게 되면 여러분의 삶의 모든 날은 구원 받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이 오락가락하거나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집니다. 그들이 어디에 서 있는지 여러분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그들 자신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 기초를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어린양의 보혈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입게 되었다. 나는 그가 보시기에 의로울 뿐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거룩하게 여기심을 받았다. 나는 그의 임재 가운데 들어갈 권리를 가졌다!"
그것은 탕자의 이야기가 말하는 바입니다. 그가 죄 용서를 받고 목에 입맞춤을 받고 좋은 옷을 입고 새 반지를 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들어와 그의 아버지의 상에 앉아 그를 위한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청 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진노를 진정시키거나 그의 선하신 은총에 우리 자신이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의롭다 함을 입는 진정한 모습입니다.
지금도 사단은 하나님 앞에서 불신앙, 거짓말, 부정직, 결점 등 온갖 종류의 죄로 여러분을 참소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최근의 몇 주동안 여러분이 저지른 모든 잘못된 일들이 기록된 긴 목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 (요한계시록 12:10). 사단은 하나님께 말합니다. "어떻게 저 자가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난 방금 저 자가 어떤 짓을 하는지 봤단 말입니다. 처벌을 원합니다. 그 자에게 그런 짓을 하도록 놔두시면 당신은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단의 고발들 중에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때때로 실패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와 다르게 행동 했습니다. 자신의 신앙적 고백에 걸맞은 생활을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재판장은 태연하고 마음이 동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사단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너의 말은 필요치 않다. 거짓의 아비여! 너는 네 시간을 낭비하고 있구나. 너는 송사할 근거가 없노라. 너는 내가 이미 무죄를 선언한 사람을 참소하고 있느니라. 떠날지어다!"
우리는 우리의 재판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 편이시며 우리의 모든 허물을 도말 하셨습니다.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이사야 38:17).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미가 7:19).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 (塗抹) 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3:25).
저는 영광의 왕께서 참소하는 모든 자들 앞에서 호통치시는 것을 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로마서 8:33).
이 글을 일고 있는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들은 자신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지고 갈 필요가 없는 죄와 염려의 짐을 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늘에서는 얼마나 깨끗한지 알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영광을 위해 예비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지금 여러분의 평안을 소유하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서, 우리는 종말에 세상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녹아지는 것, 아마도 핵 대학살에 대한 무서운 경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녹아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가장 고통의 시간 가운데서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지키도록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베드로후서 3:11, 12-14).
장차 그 분 앞에 설 때에, 우리는 그의 못 자국 난 손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의 근원께서 우리가 속죄 행위로 일생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 보다도 더 많은 것을 행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이 은혜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평강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상처를 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 값을 다 지불하셨어, 마귀야! 너는 더 이상 내 죄를 볼 수 없어. 저 못 자국들을 봐. 그를 보라고. 그분이 나의 재판을 변론하신다. 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입었다."
최근 저는 하나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주님 저는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당신의 평안을 소유하고 싶습니다. 이제 더 이상 마귀가 거짓말을 속삭이게 하지 않을 겁니다. 저의 구원이 저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제가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며 운다 해도, 혹 율법에 비춰 완벽하다고 할지라도 저는 잃어버린 영혼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저의 재판에서 변론해 주셨습니다. 당신이 저를 위해 행하신 것으로 인해 저는 안심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즉시 믿음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주님 저는 저의 방법으로 당신의 기쁨 가운데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를 통해 들어갈 것입니다. 그는 당신을 기뻐하시며 죄와 상관이 없는 분이십니다. 나의 주 예수님을 통해 당신께로 갑니다."
여러분이 그와 같은 믿음을 소유할 때, 하나님은 당신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보십니다.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된 후 지나간 옛 사람은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당신에게 관심을 보내십니다. 예수님이 거룩함에 거하시듯 우리 또한 죄 사함과 의로움과 자유케 된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염려하고 있습니까? 초조해 하고 있습니까?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비난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더 이상 죄로 인한 자책감에 거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다면 여러분의 죄는 떠나갔으며 흠은 지워졌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8:1).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두려움을 주거나 유죄를 선고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귀가 너희에게 가져다 준 것이다. 믿음으로 그것을 물리치고 이렇게 말해라. '예수님, 저는 어린양의 보혈을 통해 담대히 당신께 나아갑니다. 저는 씻음을 받았으며 깨끗케 되었으며 당신이 저를 사랑하심을 압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한다면, 주님은 여러분에게 기쁨을 주시고 하나님은 당신으로 인해 기뻐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존전으로 담대히 나아오라... 기쁨으로 충만하도록 너희의 소망을 간절히 구하라."
그것만이 진정한 평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