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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의 붉은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로새서 3:15).

이 한 구절의 말씀에는 엄청난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육체를 지배하고 다스리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온몸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 그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평안은 모든 것을 다스리는 주권자로서 우리의 삶을 다스리도록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부르심을 들어야 할 때가 있다면 그 때는 바로 혼란과 혼동의 시간가운데 있는 오늘이 바로 그 때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 4절은 다음과 같은 명령을 받고 전 세계를 달리는 붉은 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계시록 6:4).

붉은 말을 탄 자는 바로 지금 모든 평화를 제하고 피묻은 칼을 휘두르며 전 세계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그는 구 소련을 질주하며 모든 평화를 휩쓸어 갔습니다.

하나님의 숨겨진 마지막 시대의 군대

오늘날 세계에서는 매우 강력하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숨겨진 어떤 일을 조용히 행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초자연적이라서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바로 지금 하고 계신 일은 이 마지막 시대에 전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작지만 강력한 그리스도인의 군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군대는 지구상에서 가장 헌신된 군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위대한 일을 행하고 지옥을 흔들라고 명령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순결하고 헌신되며 두려움없는 남은 자들로 세상을 마감하게 하실 것입니다.

평생동안 나는 죄를 미워했던 우리의 거룩한 조상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시간, 여러 날을 기도와 금식가운데 보낸 남종과 여종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시대에 부도덕에 성공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졌습니다.

은밀한 골방의 능력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태복음 6:5-6).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구하러 은밀한 골방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실 때, 그분은 물리적인 골방 이상의 크나큰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신 것입니다. 구약은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나를 찾는 자와 찾지 않는 자!"의 두 개의 범주로 나누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하나님은 '은밀한 기도의 골방에서 주를 찾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두 종류의 자녀를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처소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에베소서 2:22). 처소란 거주하는 곳입니다. 헬라어로 "처소"는 지속적으로 거주하는 곳을 뜻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사람들이 만든 성전이나 건물에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 주님은 사람들 가운데, 즉 자기 백성들의 심령과 몸 안에 거하기로 선택하셨습니다. 주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예수님의 성전 곧, 그분의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모든 성도들은 다 이렇게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물리적 장소에 국한해서 머물지 않습니다. 어떤 나라나, 수도도(심지어 예루살렘도 아닙니다) 아니며 산꼭대기도 아닙니다. 구름이나 공중도 아니며, 어두움과 빛, 해와 달 그리고 별들도 그 분의 처소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주님은 어느 곳에나 계십니다. 그 분의 존재는 모든 만물을 채우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의 백성 안에 사실 집을 만드십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케 된 마음이 그분이 항상 거하실 처소입니다.

시온에서 나팔을 불라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찌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요엘 2:1).

오! 시온,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여, 나팔 소리를 듣고 깨어나십시오. 주의 날이 가까웠으며 우리의 왕께서 그의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해 영광 중에 그의 군대와 이르셨습니다.

오 너희 잠자는 지존하신 하나님의 성도들이여, 스스로를 흔드십시오. 너희 악한 행사를 벗어버리십시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십시오. 하나님의 적들이 주님과 주님의 성도들을 대항하여 전쟁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여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 같은 것이 자고 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으리로다... 그 앞에서 만민이 송구하여 하며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 (요엘 2:2-6).

시온이여, 여러분은 듣지 못했습니까?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일월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요엘 2:10).

다가올 폭풍 속의 유일한 소망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에게 마지막 시대에 자신이 그의 백성들에게 사면에서 불성곽이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그 사면에서 불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스가랴 2:5).

동일하게 이사야 선지자도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보장이시며 환난 당한 빈핍한 자의 보장이시며 폭풍 중에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이사야 25:4).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4:6).

이러한 약속들은 모든 선지자들이 마지막 시대에 거대한 폭풍이 닥쳐올 것을 경고하고 있으므로 미리 우리에게 안위를 주기 위한 것들입니다. 그 폭풍은 하나님의 보호벽을 강렬하게 칠 것입니다.

타락한 공동체에서 나오십시오

오늘날 목회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어느 주일날, 미국 전역에 있는 교회에서 설교자가 말합니다. “공동체에 참여하십시오” 공동체와의 연계에 관한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팟 캐스트와 설교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유대감을 심화시키는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좋은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종종 “공동체에 참여하십시오”라는 문구 뒤에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한 저자가 목회자들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문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6개월 안에 6명의 친구를 만들지 않는 한 그들은 다시 그 문밖으로 나갈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적 동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많이 다릅니다.

의의 선물

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뜻대로 만드시는 방법

무엇이 우리를 순전하도록 합니까? 이것은 성화라고 불리는 기독교 신학의 핵심 이면에 있는 질문입니다. 저는 성화에 관한 온갖 종류의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교회 지도자들은 각자가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저에게 우리를 정결케하고 성화시키는 그분의 일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셨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미국을 위해 울어야 할 때!

저는 결코 저 자신을 예언자라 주장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저의 뼈를 녹일 정도로 저의 심령에 불 지피실 때에는 보고들은 것을 서슴지 않고 말합니다. 파수꾼의 메시지라고 하든 여러분 마음에 드는 대로 부르셔도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대해 저의 심령에 말씀하신 것을 저는 여러분에게 꼭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진실된 예언자들이 있다고 믿습니다. 때때로 미래의 일들과 다가오는 심판을 성령님의 감동에 의해 예언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실로 몇 번이나 주 성령님께서 제게 임박한 심판에 대하여 경고하도록 강요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는 메시지는 예언적인 것은 아닙니다.

고난을 통해 배우는 것

시편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71)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 무슨 신학이론이지? 라고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실 지도 모릅니다. 고난 받는 것이 정말 내게 유익한가?

여기서 고난에 대한 히브리어를 살펴보면 "위협하는, 문제가 있는, 낮아진, 징벌을 받은, 다친, 겸손해진, 약해진, 풀이 죽은" 등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안에 들어있는 의미를 살펴볼 때 "위협하는, 문제가 있는, 낮아진, 징벌을 받은, 다친, 겸손해진, 약해진, 풀이 죽게 되는 것이 내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이것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한 것이다. 그로 인해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울 수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구절의 율례라는 말은 "새겨진 법"이라는 뜻입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이런 모든 문제를 경험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러는 중에 하나님께서 내 안에 주의 법과 도를 새겨놓으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