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David Wilkerson

여러분은 성도들로부터 “하나님이 그의 교회에 새 일을 행하고 계신다“라고 하는 말을 얼마나 자주 듣습니까? 그들이 말하는 “새 일“이란 부흥, 성령의 부으심, 그리스도의 강림, 혹은 하나님의 운동으로 불리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새 일“은 너무나 자주 빨리 잊혀지고 맙니다. 그리고 희미하게 사라지고 나면, 다시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로 인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운동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됩니다. 기독교 사회학자들은 소위 강림이라고 불리는 과거의 많은 예들을 조사하였습니다. 그 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행사의 평균 주기가 5년 이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하나님이 오늘날 그의 교회에 새 일을 행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성령의 역사는 어느 한 지역에서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보기 위해 멀리 여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새 일“은 가장 가까운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능력을 구하라

David Wilkerson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과 마지막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실 때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한복음 16:23).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16:24).

놀랄 만한 선언이었습니다. 이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그들을 떠나 잠시 동안 보지 못하실 것이라고 예고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에게 하늘의 모든 축복들을 허락하셨음을 보증하셨습니다. 그들이 해야 했던 것은 단지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경 주석자들은 이 약속이 그 이전까지는 제자들에게 적용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주님이 이 땅을 떠나 아버지 곁에 가시기 전까지는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할 수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성도의 사역 - 주님의 얼굴을 보는 것

David Wilkerson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직으로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모두)가 이 직분(ministry)을 받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고린도후서 4:1).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성직의 개념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성직이란 목사안수를 받은 설교자나 선교사들만이 감당할 수 있는 직책이라고 여깁니다. 우리는 목사들이란 신학교를 졸업한 후 결혼식과 장례식 사회를 보고, 예배를 인도하고,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목사를 아픈 자들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영적의사로 간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식대로 성직을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모두는 사역의 성공 여부를 그 규모나 효과 면에서 평가하고 얼마나 많은 업적을 성취했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 중요한 기준은 얼마나 사역이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 교회가 얼마나 커졌는지, 얼마나 많은 수의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 했는지가 아닙니다.

생명의 강

David Wilkerson

에스겔 선지자는 놀라운 이상을 보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손이 에스겔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려가셨는데 거기서 "모양이 놋같이 빛난" 한 사람이 에스겔에게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에스겔 40:3). 요한도 밧모섬에서 자신에게 나타났던 한 사람의 모습을 유사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요한계시록 1:15).

물론 이 두 구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에스겔을 하나님의 전 문으로 인도하셨는데 거기서 그 선지자에게 놀라운 이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 때 그리스도의 몸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밝혀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에 관한 이상이었습니다. 에스겔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만지심

David Wilkerson

다니엘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습니다,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다니엘 10:10). 여기서 “어루만졌다(touched)”란 단어는 세게 붙잡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은 “여호와의 손이 내게 닿았을 때, 나로 엎드려지게 했습니다. 그분의 만지심은 나로 전심으로 그를 찾게 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만지심은 어떤 사람의 삶이든지 언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그 사람은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주를 찾는 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나는 종종 하나님이 왜 이렇게 간절히 원하는 사람만을 만지시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어떤 종들은 주를 간절히 찾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되는가 하면 다른 신실한 사람들은 왜 자기의 길로 가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만지신 종들은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갖습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바알의 단을 헐라

David Wilkerson

사사기 6장을 여는 첫 구절을 주목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사사기 6:1).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여러 세대 동안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반복되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사기의 앞장을 죽 읽으면 우리는 이 말씀이 여러 번 반복되어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이 이야기하고 있는 본질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바알들을 섬겼다.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셨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사건은 사사기 3장에서 일어납니다.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년에…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사사기 3:11-12). 하나님은 그 백성을 대적인 모압에게 넘기셨습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사사기 3:12).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 이방의 대적을 18년간이나 섬기면서 고난과 공포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전임사역

David Wilkerson

교회 역사의 초기에 커다란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 끔찍한 시기에 사도 요한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보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황제는 네로나 도미티안 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요한을 밧모섬으로 추방했습니다. 밧모섬은 작고 외진, 인적 없는 황량한 섬이었습니다. 전 주민이라고 해봐야 죽을 때까지 그 섬에서 살도록 추방당한 몇몇 죄수들 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처럼 요한은 밧모섬으로 추방당했으며 거기서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사랑하셨던 바로 그 "애제자 요한" 입니다. 그는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그리스도의 품에 자신의 머리를 기댔던 바로 그 요한입니다. 그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의 형제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담긴 세편의 서신서와 더불어 네 번째 복음서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소리 없는 외침

David Wilkerson

마가복음 7장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커다란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극적인 장면은 단 다섯 절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마가복음 7:31-35).

그리스도의 몸

David Wilkerson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27). 나아가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14).

바울이 근본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바는 이것입니다. "당신의 몸을 보십시오. 손과 발, 귀와 눈이 있습니다. 뇌가 몸의 다른 부분과 분리된다면 그것은 당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는 머리일 수만은 없습니다. 그에게는 몸이 있고 우리가 바로 그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로마서 12:5).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는 머리 되신 예수님께만 붙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동시에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 된 자들과 붙어 있지 않고 그리스도께만 붙어 있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만지심

David Wilkerson

하나님께서 누군가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면, 그 사람은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러면 그는 그리스도와 친밀하게되고 그 친밀함으로 인해 하늘로부터 새로운 계시를 받게 됩니다. 그 사람은 끊임없이 붙어 다니는 그의 죄들을 성령 앞에 드러내고 그것들을 극복하길 간절히 바랄 것입니다. 이제 그의 영은 회복되며 그는 안식의 처소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열정과 더 큰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섬기기 시작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다가오는 심판의 날에 대해 점점 더 분명하게 인식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것이며, "너는 타락한 세상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었느냐?"는 중대한 질문에 답해야 함도 그는 알 것입니다. 실로 우리 모두는 심판 날에 이러한 질문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너는 불신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어떻게 증거 하였느냐? 너의 삶과 행동의 방식으로 그를 어떻게 드러내었느냐? 어떻게 너의 삶을 통해 그를 나타내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