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나락에서!

David Wilkerson

시편 38편에서 다윗의 고백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 경건하고 의로운 자가 자신의 한계상태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풀이 죽고 의기소침한 낙망의 상태로 자신의 몸부림으로 인해 모든 힘을 소진해 버렸습니다. 미친 듯이 외치는 그의 절규를 들어보십시오.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나는 귀먹은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입에는 변박함이 없나이다" (시편 38:6, 8, 10, 13-14).

당신의 친구에 대해 점검해 보십시오!

David Wilkerson

당신은 가장 가까운 친구로 누구를 말할 수가 있읍니까? 당신이 믿든지 안 믿든지, 이 질문은 하나님에게 아주 중요한 관심의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친구 관계는 당신의 마음 상태에 대해서 하나님이냐, 아니면 세상이냐 하며 큰소리로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나의 친구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그들이 주님에 대해서 기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그들이 주님을 불쾌하게 합니까? 라고 당신은 기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올바른 친구는 당신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열정의 고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당신의 삶을 하나님을 향해 갈수 있도록 권고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올바르지 못한 친구는 당신을 악의 쇠사슬로 묶어 버립니다. 그것은 곧 당신을 무서운 파멸의 구속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기 힘든 이유

David Wilkerson

나는 교회에 오랫동안 존재하는 한가지 문제에 관해서 얼마동안 혼란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문제는 깊이 저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는 것이 왜 그렇게도 힘든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있는 모든 것의 해답은 믿음과 연합된 기도라는 것을 말씀은 우리에게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립보서 4:6) 바울은 여러분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주님을 구하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응답하시기 이전에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바는 명확합니다. 항상 먼저 기도하라! 우리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맨 처음에는 친구를 찾아가고 그 다음에는 목사님이나 상담원을,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앞서 먼저 주님께 가야 합니다!

왕위를 잃어버린 그리스도

David Wilkerson

사도 바울은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디모데전서 6:15)라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은 "재림의 때에 그리스도께서 만민에게 누가 진정 주님이신지를 보여 주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모든 나라와 만물의 왕으로, 교회를 다스리시는 주로 세우셨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관상 보이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통제할 수 없어 보일 수 있다. 사단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수님의 발아래 놓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여전히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골로 새서1:16).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8절).

하나님께 분노하고 계십니까?

David Wilkerson

크리스천이 하나님께 분노하는 것보다 위험한 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분노하는 성도들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고, 저는 이것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께 분노하고 적개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께서 그들의 삶과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대신하여 일을 이루지 않고 기도에 응답하지 않기에 하나님은 자기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저는 남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한 젊은이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한때 크리스천이었던 이 죄수가 지금 하나님께 가지고 있는 마음은 분노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거룩한 땅!

David Wilkerson

구약은 신약에 드러난 진리의 그림자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는 신약의 진리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낄 때마다 구약의 예시를 돌아봅니다. 사실 저는 신약을 믿는 이들을 위한 꼭맞는 진리로 가득 차지 않은 구약의 이야기나 사건은 단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사이셨던 저의 할아버지는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데이빗, 인격에 대해 가르치고자 한다면 구약을 보거라. 인격에 대한 모든 가르침이 거기 있거든." 저는 그가 옳았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예가 되는 것이 불타는 떨기나무 가의 모세에 관한 구절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다소 깊이 조사해보고 싶습니다. 그 구절이 거룩이라는 주제에 관한 심오한 신약의 진리로 가득 차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거룩하게 되는가?"라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신약에 의하면 우리는:

구한 것 이상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David Wilkerson

우리가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 중에 하나는 바로,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신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반쪽 진리에 불과 합니다. 정확히는, "하나님은 기도한 것 이상으로 응답하신다 (God overanswers prayer)!"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여러분 앞에 선 변호사가 되고자 합니다. 그래서 성경전체를 통해서 또 지금 현재까지, 매 세대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의 기도에 넘치게 응답하셨음을 변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구한 것 이상으로 주실 뿐만 아니라, 종종 우리가 구하려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까지도 주십니다.

그럼 먼저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증명을 해보겠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은 기도에 넘치게 응답하심'을 증거하고 있는데, 이 진리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증명되어져 왔습니다.

1. 호세아 14장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넘치게 축복하십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그저 응답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넘치게 응답하신 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예가 있습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마음의 평안

David Wilkerson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은 마음에 근심을 두고 있으며 두려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공포와 불안과 불면으로 고통 당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같은 절에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여전히 소수의 성도들만이 지속적인 마음의 평안을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평안은 왔다가는 가버리며, 근심과 불안에 다시 빠지며 스트레스로 인해 망가지고 맙니다.

메시아의 오심에 대해 사가랴는 이렇게 예언하였다.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누가복음 1:74-7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신 이유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날들을 통해 그의 평안을 누리며 두려움 없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가 있습니다.

얍 복 강

얍복! 얍복강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아무 의미 없는 곳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말씀을 읽은 후에는 여러분의 영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얍복강은 야곱이 주님과 씨름하였던 곳입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주님께 완전히 항복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새로운 성품과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끝까지 쥐고 있던 우상을 던져버리고 그의 생애 가장 위대한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밤에 일어나 얍복 나루를 건널쌔"(창세기 32:22).

얍복이란 건너가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비우고 쏟아 붓기 위한 싸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얍복이라는 곳에서 얼마나 영광스러운 진리가 드러나는지 모릅니다! 얍복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모든 면에서 필요한 말씀입니다. 얍복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죄를 극복할 능력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는 곳입니다. 얍복은 삶과 죽음의 위험, 완전한 항복으로 이끄는 위험을 상징합니다.

성탄절: 부활

성탄절은 결코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 분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부활을 하나의 부활절 메시지로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구유에서 태어난 그 어린아기의 탄생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과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두 사건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하나이며 동일합니다.

목동들이 구유에 누우신 아기를 응시했을 때 그들은 모든 인류를 구속하실 구원자를 보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이 그를 보았을 때, 그들은 사망 권세를 이기실 왕을 보았습니다. 예언자들이 그의 때를 보았을 때 그들은 감옥문을 열고 사슬을 끊고 포로를 풀어줄 해방자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이 누구시며 왜 그가 오셨는지에 대한 그들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