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너의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전 장과 문맥상의 자세한 내용의 본질을 주의 깊게 읽고 이해해야만, 우리는 그 부르심에 대한 온전한 의미와 중대성의 심오함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1장은 아브라함과 그의 아비, 그리고 그들의 전 부족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갔음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가나안은 약속의 땅, 숙명, 성취, 그리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축복의 풍만함과 성취를 상징합니다. 사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그분이 그들의 삶과 우리 삶 속에 거하시기를 원하고 계심을 말해줍니다. 그 여정은 혹독하고 길며 고달픈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비극과 위협들, 그리고 엄청난 충격적 경험들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그들의 가족이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 애통의 골짜기를 걸어서 통과할 때, 그 약속의 땅은 머나먼듯했습니다.
야이로라는 한 비통한 아비가 예수님께로 와서는 그의 죽어가는 딸을 살려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려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마가복음 5:22-24)
이 야이로라는 사람은 거의 모든 기독교인의 표상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되심을 알고 있으며, 우리에게 환란이 닥칠 때마다 그분께 달려가 그분 발치에 엎드려 그분의 자비와 도움을 구합니다. 야이로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23절) 라고 간청했습니다. 이것은 진실된 믿음의 확신이었습니다. “주님, 내 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당신입니다. 당신은 모든 권능을 갖고 계십니다! 당신은 내 딸을 살릴 수 있습니다!”
죽음을 정복하신 이는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죽음에서 일으키신 자들보다 더 위대한 그리스도 권능의 증거는 이 지구상에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요한복음 5:21) 예수님께서 사망을 이기는 권세를 갖고 계시다는 사실은 명백히 선포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 자신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곧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1:25) 그리고 그분은 그것을 실증해주셨습니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실제로 믿고 있을까요? 그분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한복음 5:25-26)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에베소서 1:16-20)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는 단순히 이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과거의 위대하심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그분의 위대하심을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무릇 너를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날카롭지 못할 것이라...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사야 54:17) 당신을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모든 노력은 그저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당신을 향해 겨냥된 저 큰 총구들은 주님의 임재 안에서 녹아 없어질 것입니다.
히브리 원어에서 이 구절은 이렇게 번역되었습니다. “너를 파멸하려는 어떤 계획이나 어떤 무기도, 그 어떤 험악한 대포도 너를 밀쳐내거나 넘어뜨리지 못할것이며, 오히려 그것은 없어져 버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겨냥한 사탄의 공격을 말살시켜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을 열심히 찾는 자들의 상은 정복자 이상이 될 수 있다는 특권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37)
저는 최근 아일랜드의 한 목회자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그의 두려움을 제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는 앞으로 일어날 어려움을 예상하며 히브리서 11장 1절을 인용했는데, 그것은 제게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어보신 적이 있으시죠?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그리고 그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게리, 당신도 알다시피 두려움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오는 거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이 증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요. 그것이 바로 두려움입니다. 그것은 당신 안에 있는 소신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바라는 것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 인생에서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걸림돌입니다.”
제가 하나님께 처음으로 헌신했을 때, 제 마음 외에는 그분께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시건방지고 사회성도 전혀 없는 깡패였습니다. 저는 거리의 부랑아였습니다.
저는 뉴욕에서의 폭력과 범죄의 삶을 떠나 제 인생을 바로잡기 위해,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성서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성서대학에는 들어갔지만, 설교자나 전도사가 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라틴 사투리가 심한 저에게 그러한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그분께서 저를 무엇으로든 사용하신다는 것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무슨 쓸모가 있나? 하나님을 위해 나 같은 것이 뭘 할수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으로 저는 혼란스러웠고 낙심되어 있었습니다.
주님과 동행할 때 당신은 빛, 방향, 분별력, 계시, 지식을 상으로 받을 것입니다. 매일 자신이 죽을수록 빛은 더 환해질 것입니다. 스가랴선지자는 그리스도께서 어둠 속에서 우리를 비춰줄 빛으로 오셔서 우리의 발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79 참고).
당신이 지금 어떠한 어둠과 망설임의 저주에 놓여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복음 8:12).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한복음 12:46).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로새서 1:13).
당신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당신의 삶은 아직도 혼란, 안개 등의 어둠속에서 걷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예수님과 사랑에 빠져있고, 그와 대화를 하며, 친밀한 교제를 하면 예수님께서 빛으로 나타나십니다. 예수님의 임재 안에는 조금의 어두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머지않아 마귀가 들어서서 탈취하기 때문에 통제되지 않을 정도로 엇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정말 엄청난 충격을 받고 파괴적인 자아상(Self-image)을 갖게 될것입니다. 그들의 생각과 감정은 제어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혀와 행동은 분노와 쓰라림으로부터 비롯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저 예수님과 사랑에 빠져, 함께 동행하고, 그와 대화하면 – 예수님께서 사탄은 우리를 지배할 권한이 없다는 것을 곧 알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재빠르게 하나님께 모든 통치권을 드릴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마귀를 좇아내고, 믿음으로 바로서서 모든 두려움, 거짓, 음모, 지옥으로부터 오는 모든 궤계에 맞서 싸울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하시더라”(마가복음 16: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