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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Devotionals

하나님의 임재

David Wilkerson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워 졌습니다. 에녹은 장막의 뒤편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체험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 믿고 기도했습니다. 에녹은 이 땅위에서 더 이상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오시옵소서! 이 땅위에 내가 남아 있어야할 그 무엇도 있지 않습니다.”

크리스천들이 소위 말하는 “믿음”을 얼마나 허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요. 그들의 믿음은 모두 자신의 필요, 계획과 목적이 중심입니다. 그리고 흔히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기만 합니다. 에녹과 같이 마귀의 어두움에서 벗어나 하나님 손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 안에서 승리의 부재

David Wilkerson

이 세대의 가장 비극적인 현실은 바로 수 많은 크리스천들이 진실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마음아파하시는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안에 참된 승리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정말 충격적입니다. 수 많은 믿는 이들이 어느 순간 타오르듯이 뜨겁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차가워 집니다. 그들은 두려움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우울증은 증기롤러처럼 그들을 덥치고 밀어버립니다.

부부들의 결혼생활도 극과극을 달립니다. 하루는 모든 것이 좋다가도 그 다음날에는 비참할 정도로 비관적입니다. 어떤 날들은 서로 대화조차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지요. “뭐, 원래 결혼생활이 그런거지. 언제나 행복하고 서로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야.”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26절에서 믿는이들에게 말합니다.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이 구절은 수 많은 크리스천들에 대하여 완벽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사탄은 마음대로 크리스천들의 삶에서 들어갔다 나왔다 합니다. 그들은 사탄이 마음속에 침투하는 것을 막을 권세도 능력도 없습니다.

거하는 자

Gary Wilkerson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창세기 11:31).

데라라는 인물에 관하여서는 너무 조금 기록되었기에 우리는 그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합니다.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갈대아 우르라는 지역은 한참 떠오르는 지역이었습니다. 그 지역에 번영과 활기가 넘치기 시작하는 떄였습니다.

아브람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는 그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전도 유망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을만한 살기 좋은 지역이었지요. 그러나 아브람의 아버지는 그 땅을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떠난 이유가 아브람 아버지의 야망 때문인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뒤따르는 표적으로

Jim Cymbala

그리스도의 세계를 얻으려면 열심히 탐구하는 것 이상을 요구합니다. 올바른 교리만 가지고는 충분치 않습니다. 선포와 가르침도 충분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뒤따르는 표적으로 그분의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히브리서 2:4 참조) 달리 말하면, 복음은 하늘에서 보내주신 성령의 개입하심과 함께 전해져야 합니다.

사도들은 하나님께 초자연적 일들을 행해주십사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믿음이 관념이나 이론 이상의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러한 믿음에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오 하나님, 당신의 손을 펼쳐주시옵소서. 저희와 함께 일해주시옵소서.” 그들은 확실히 살아있는 믿음, 단지 십자가에만 기초한 믿음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텅 빈 무덤에 기초한, 살아있는 믿음을 원했습니다. 타락한 정치인들과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죽임당했던 한 순전한 자에 대한, 너무도 가슴 아픈 십자가의 사건은 인간의 관점으로 보아도 이해할만합니다. 그러나 그 텅 빈 무덤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오직 초능력의 하나님만이 그러한 일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믿음!

David Wilkerson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이 하나님을 그토록 기쁘시게 해드린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토록 기뻐하시는 믿음을 낳았던, 그의 하나님과의 동행이었습니다. 다음의 두 구절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히브리서 11:5-6)

성경 전체를 통해, 그리고 온 역사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했던 자들은 믿음의 남녀들이 되었습니다. 만일 교회가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며 지속적으로 우리 주님과 친교한다면, 그 열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진정한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는 세속적이지 않았습니다!

David Wilkerson

살아있을 때 들리움 받아 올라간 (승천한) 단 두 명의 선지자였던 엘리야와 에녹에게는 무언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둘다 죄를 혐오했고, 그것을 대항해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너무도 가까이 동행했기에, 경건치 못한 것들에 대한 그분의 증오를 공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든 자에게 있어서 부인할 수 없는 성향은 죄에 대한 증오가 점점 커진다는 사실이며, 죄에 대한 증오뿐만 아니라 그것으로부터의 분리입니다. 당신이 아직도 이 세상을 사랑하며 경건치 못한 것들에 친숙해 있다면, 그리고 그분을 욕하는 자들과 친분을 맺고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이며, 그분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을 때

David Wilkerson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증가하는 재난들로부터 숨기 위해 산속으로 달려갑니다. 소위 선지자라고 불리는 자들은 그들의 피난처로 나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은 예측되는 미국 경제 붕괴로부터 탈출하여 이스라엘로 돌아가라는 경고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때 제가 어디에 있을지를 압니다. 경제가 몰락하면, 1987년 10월 19일에 증권시장이 몰락했을 때 제가 그랬던 것처럼, 저는 증권가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저는 그곳에서 현대판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고 대화하며, 두려움 없이 평온하고 담대한 증인으로서, 그들의 세계가 무너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나가라!”고 말씀하셨지, “너희는 숨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성령이 계시는 곳에 있기를 원하며, 그분이 전방의 최전선에서 곤경에 처해있고 두려움으로 가득한 자들을 그분 자신께로 부르실 것임을, 당신은 확신해도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David Wilkerson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5-6)

“동행했다”라는 단어의 히브리 원어의 의미는, 에녹이 오르락내리락, 들락날락, 왔다갔다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 친교하며 성장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에녹의 아버지 야렛은 962년을 살았고, 그의 아들 므두셀라는 969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에녹은 365년, 또는 “한해의 햇수”만큼을 살았습니다! 그의 온 생애 모든 해의 365일 동안, 그는 주님과 팔짱끼고 동행했습니다. 주님은 그의 삶 자체였습니다!

은혜가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Gary Wilkerson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디모데전서 1:3-4)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못마땅하게 여길지언정, 에베소에 머물 것을 권고하고 있었습니다. 디모데가 그곳에 머무는 것을 원치 않았다면, 그 이유는 에베소 교회가 당면하고 있었던 문제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선해 보이고 의로워 보이려고 노력하며, 독선에 빠져 살고 있는듯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독선적일 때, 대부분의 경우 당신은 속은 것이며, 그것은 당신을 탐욕과 야심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때에 마게도냐에는 기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역시 기근과 빈곤으로 찌들어 있었습니다. 마게도냐와 예루살렘이 그러한 환란 가운데 있었을 때에도, 에베소의 경기는 여전히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많은 자원을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위해서만 그것에 집착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더 높습니다

Carter Conlon

"아침에 요나단이 작은 아이를 데리고 다윗과 정한 시간에 들로 나가서 아이에게 이르되, 달려가서 나의 쏘는 살을 찾으라 하고 아이가 달려갈 때에 요나단이 살을 그의 위로 지나치게 쏘니라. 아이가 요나단의 쏜 살 있는 곳에 이를 즈음에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외쳐 가로되, 살이 네 앞편에 있지 아니하냐 하고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또 외치되 지체 말고 빨리 달음질하라 하매, 요나단의 아이가 살을 주워가지고 주인에게로 돌아왔으나…" (사무엘상 20:35-38)

그의 인생에서 이 어려운 시점까지 오게 된 다윗의 여정을 잠깐 생각해 보십시오. 그 날도 들에서 아버지의 양들을 보살피는 평상의 날에 지나지 않았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날 그는 느닷없이 안으로 불려들어가 사무엘 선지자를 만났고, 사무엘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다음 왕이 되도록 그에게 기름부음을 했습니다. 왕좌를 계승하기 전에 다윗은 은밀하고도 엄청난 승리들을 거두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리앗이라고 불리는 거인을 상대로 공공연하고도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의 삶에 그러한 믿음과 담대함을 부여했던 그 기름부음 안에서 행했을 때, 다윗은 그의 마음속에서 불타올랐음이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