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계절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Gary Wilkerson

어떻게 해도 떨쳐지지 않는 삶의 문제를 힘들게 싸워가고 계십니까?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며 정말 기쁨을 누릴 수가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싸워야 하는 걸까?" 고민하시나요.

저는 사람들을 상담하는 것을 즐거워하는데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나 자유케 되어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이들을 보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한때 영적으로 불완전했던 지체들이 결국 온전케 되어 새 소망, 기쁨, 믿음의 인생을 사는걸 보는 것보다 더 기쁨을 주는 일은 없습니다.하지만 이런 일이 결코  쉽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매일 직면해야 하는 충돌은 심각합니다. 우리 삶 속에 당면해야 할 도전적 상황이 끝없이 계속되기 때문이죠. 사탄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역사하고 계심이 가려지도록 작업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가장 헌신된 기독교인조차도 불신의 위기에 시달리도록 힘씁니다.

두려움에 직면하며

Jim Cymbala

우리는 크리스천으로 살며 어디를 가든 적대감을 발견할 수 있죠. 그러한 적대감이 우리를 두렵게 하거나 소심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일어설 때 우리 가족, 친구, 동료들에게서 소외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공공의 장소에서 고백하는 게 중요하다고 경고하시는 이유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승리를 꿈꿀수 없음

David Wilkerson (1931-2011)

이사야 31 장은 인간의 능력으로 적과 싸우려는 노력의 무의미 함을 완벽하게 묘사합니다. 저는 이 장으 통해 우리의 욕망, 나쁜 습관들을 물리치려 하는, 또 인간의 생각과 협력으로 죄를 이기려하는 오늘날 우리의 시도 자체가 아무런 효과가 없음을 보여주는 한 형태이자 그림자라고 믿습니다.

예수님때문에 알게된 참 기쁨

David Wilkerson (1931-2011)

시편 저자는 기쁨이 넘치며 풍성한 삶을 살 수있는 영광스런 비밀을 알려줍니다.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유복한 자라 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얼굴 빛에 다니며" (시편 89:15).

이 구절의 히브리 원문의 뜻은 이렇습니다. "기쁜 소리를 매일 듣는 이들은 매일 평안과 능력과 축복 속에 잠에서 깬다. 그들의 삶은 아침의 해와 같은 기쁨으로 채워진다."

요약하자면 이 시편 저자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는 바로 이것 입니다.  "승리하는 삶의 기초가 되는 강력한 기쁜 소리가 있다. 이 것을 알고 깨닫게 되면 우리는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 할 것이다."

"누구든 이 기쁜 소리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이들은 자기 확신을 가지게 되고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그들은 점점 더 견고해지는 안정감에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들은 사탄에게 흔들어 놓음을 당해도 능히 이겨냅니다.왜냐면 성령께서 이 기쁜 소리의 참 뜻을  그에게 드러내시기 때문 입니다! "

우리 처음 사랑이 시들었나요?

David Wilkerson (1931-2011)

예수께서 -- 바울의 영적으로 충만한 가르침 위에 세워졌던-- 에베소 교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하십니다. (계 2:4).

여기서 예수님께서 "처음 사랑"이라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처음 구원 받았을 당시 성숙하지 못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독점적으로 내어드린사랑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한때 네 마음의 첫번째 자리에 있었지. 그런데 넌 이제  다른 것들로 나의 그 자리를 채웠구나."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예수님께서 아시아의 일곱교회에게 지적한 모든 죄 가운데 가장 첫번째로  이 죄를 명시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보다 그분을 슬프게 한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분을 향한 애정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정말 탁월한 바울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저도 사실 에베소 교회에게 쓴 바울의 편지를 읽으며 이들이 받고 또 살아 낸 복음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늘 가까히 동행하였고 바울 역시 그것에 대해 에베소서 1:1-5에서 긴 지문을 할애하여 칭찬 하였습니다.

전심으로 예수님을 붙잡으세요

Gary Wilkerson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보고 구걸하거늘...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Acts 3:1-2, 6-8).

베드로와 요한이 오순절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자 그 전과 댈수 없을 만큼 많은  기적을 목도하게 되죠.

그날도 그들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갔을때 아름다운 문, 미문이라는 곳에서 불구의 남성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그전에도 여러번 이 남성을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그가 구걸하였을땐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우리를 보시오."

그 남자는 아마 이들이 돈을 주려나보다 생각했지만 이들은  그에게 명령합니다.  "일어나 걸어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남자가 뛰어다니며 걸어다니게 됩니다! 그러자 그것을 본 모든 이들이 놀라워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을 잊어버렸습니까?

Nicky Cruz

우리는 이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에게 어떻게 반응 하고있나요? 이 시대의 문화는 극빈자들과 불량배들과 중독병자들과 알콜중독자들과 동성애자들과 에이즈환자들과 범죄자들에게 어떤 것을 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나요? 우리는 그들을 보며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로 인식하고 있습니까? 그들을 절망과 속박으로부터 길을 찾아야 하는 잃어버린 영혼으로 인식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아예 없는 사람들처럼 모른척 하십니까?

아예 우리의 시야에서 그들이 보이지 않도록, 우리 시선의 반경으로부터 거리를 두어 그들과 아무 상관없이 사십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것들을 정녕 잊은게 아닐까요. 그분의 구원의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도 그들과 바를바 없이 잃어버린바 된, 소망없는 눈먼 장님과 같은 인생이란 것을 잊은 건가요?

하나님의 선하심을 다시 기억하기 위한 싸움

David Wilkerson (1931-2011)

시편 73편을  쓴 저자 아삽은 다윗 왕의 굉장히 친한 친구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있는 순수한 영혼의 그는 시편에서 그의 노래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의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니" 이 말은 "하나님께서 내게 깨끗한 마음을 허락하사 내가 복받게 해주셨다." 란 고백입니다.그런가 하면 바로 이어지는 다음 구절에서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전 거의 넘어질뻔 했습니다! 전 거의 죄가운데 빠져 버릴듯 했습니다." 왜 아삽은 이러한 고백을 하게 된걸까요?

시편73:14절 본문을 보면 아삽이 큰 문제를 직면하게 된것을 알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비교의식속에 힘들어 합니다. 3절에서 고백하죠.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시기하였음 이로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자 악한 사람들이 엄청난 재산을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자 자신의 빈곤함이 더 아프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여러가지를 근거로 이 시인은 울부짖습니다. "주님, 전 이해가 안돼요!"

그분께서 아버지가 되시기로 결정하시다

David Wilkerson (1931-2011)

자주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늘 우울하고 그런가하면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자신이 죄를 승리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직장에서 해고당할까봐 걱정하고, 그들의 건강, 그들의 가정을 걱정합니다.그들에겐 평안도 없고,기쁨도 없고, 쉼도 없습니다.

저도 그와 같을 때에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죠.  "내가 너와 이렇게 오랜동안 함께 하였는데  넌 아직도 보지 못하니? 너는 여전히 너의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느냐?"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친밀함을 통해   자신이 어떠한 분이신지,또한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되길 원하시는가를 간절히 보이시길 원하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가지게 되었음을 발견해야합니다!

첫째,그분께서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택한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