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따르는 것

David Wilkerson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아버지에게 완전히 순종하였던 것처럼 우리 또한 성령의 인도함에 완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한복음 5:19).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5:30).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셨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자로서, 우리가 어떻게 감히 우리의 구주이시고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스스로 하지 못하신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기다리고, 아버지의 마음을 갖고자 하셨습니다.

부활의 능력을 입는 것

Gary Wilkerson

부활의 엄청난 결과를 상기시키기 위하여 제 아내인 켈리와 저는 서로에게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대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약을 완성시키시고, 부활하시고,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의 능력을 붙들고, 옷을 입듯이 우리의 삶에 입혀야 합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린도전서 15:54).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 없이는 우리가 크리스천 일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담대하게 말합니다. 오늘날에는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부활이 있었든 없었든 상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부활이 없었다는 증거가 나타나도 나는 크리스천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고 이 세상도 더 나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당신도 행할 수 있습니다

David Wilkerson

몇 달 동안 저는 과부, 고아, 헐벗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왔습니다. 궁핍해서 더 이상 보험료를 낼 수 없거나 살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편지를 받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만군의 여호와여, 먹을 것을 주시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십시오”라고 간청합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기도만 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행해야 한다.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네가 그들을 먹이거라. 너에게는 능력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잘 생각하셔야 할 것은 아무도 좋은 일을 행하는 것만으로 구원받을 수 없지만, 그 일로서 심판받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많은 헐벗은 사람을 입히고 굶주린 자를 먹였는가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 점은 “주님을 구주로 고백하고서도 나만을 위해 살았는가? 욕심스럽고 과하게 사모으느라 예수님을 잘못 증거가 되고 있는가? 도움이 필요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눈감고 지나쳤는가?”입니다.

성령으로 행하는 것

David Wilkerson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 5:25). 이 간단한 지시에서 사도 베드로는 평범한 말로 “성령으로 살면 삶의 모든 것을 주관하게 내어드려라. 우리는 모두 성령으로 행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지속적이고 확실한 인도자로 보내졌으며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모든 사람 안에 계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몸에 거주하고 마음을 다스리기를 요청하십니다.

많은 크리스챤들이 성령님께서 우리를 예수님께로 향하게 하고 매 순간 우리 안에서 계속 일하시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우리 대부분이 위기의 순간 때마다 위로를 얻으려 그분을 셀 수도 없이 불렀습니다. 성령님을 존중하며 그분에 대해 설교하고 성령의 선물과 열매에 관해 가르칩니다. 성령님께 기도하며 찾고, 천국을 열어 교회를 회복시켜달라고 애원합니다. 많은 크리스챤들이 진실한 성령님의 발현을 경험했지만, 적은 사람만이 성령 안에서 걷는 의미를 아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 부활의 목적

Gary Wilkerson

거의 모든 크리스챤들이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 매일의 삶에서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서고 다시 살아나신 이야기의 부분은 알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그 놀라운 진실을 적용하기 충분할 만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큰 차이점을 만듭니다.

그리스도 부활은 영적인 삶뿐만 아니라 매일의 삶을 위해서도 급진적인 결과를 가집니다. 부활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대부분 사람이 영적인 삶과 연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땅에서의 매일의 삶과 결부 짓지 않습니다. 부활이 우리의 결혼, 직장, 가족과 어떻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일, 심부름, 의무, 요구로 어쩔 줄 모르는 우리의 삶에서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당신을 위한 구원의 말씀

David Wilkerson

엘리야가 이사벨로부터 도망쳐서 동굴에 숨었을 때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서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열왕기상 19:11) 하나님은 거기서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서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9:11)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서도 여호와께서 겨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9:12)

하나님은 당신이 지치고 상처받았을 때 어떤 말씀이 필요한 지 잘 알고 계신다. 그런데 이건 당신을 판단하는 말이 아니고, 혼내시는 말씀도 아니고, 꾸짖는 설교도 아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 말씀 가운데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다고 본다. “네가 시험에서 넘어졌을 때, 너를 심하게 다루지 않을 것이다.” 엘리야는 아주 세밀하고 친절한 음성을 듣고 싶었다.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9:12). 어떤 번역은 이를 “부드러운 소리”라고도 말하고 “새롭게 하는 부드러운 바람”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화나신 게 아니다

David Wilkerson

당신은 충성 어린 종이요, 열심히 기도했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했다. 과거에 승리한 적도 있으며, 주님을 깊이 사랑한다. 그런데 지금 당신은 전에 없이 깊게 상처 받았으며, 심지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기도 힘들다.

사랑하는 이 성도는 지금 영적 전쟁 중인 것이다. 전투와 상처, 당신을 망가뜨리려고 하는 악랄한 적이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순간에 자신을 정죄하는 생각들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당신의 양심은 이렇게 속삭인다. “옛날보다 열심히 기도하고 있지 않잖아. 말씀을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너는 메말랐고, 미지건 해서 불이 없어져버린 상태라 좋은 증인이 될 수가 없는 거야. 이제 당신은 사탄에게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그 평안을 빼앗아 가게 놔둬버리게 된 거야. 너를 붙들어 줄 것들이 다 없어져 버렸어.”

그리고 우리는 생각한다. “나는 주님을 저버렸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어.” 너의 꺼져가는 믿음은 점점 약해져서 사단은 그것이 완전히 꺼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사랑

David Wilkerson

예수님이 한 번은 그의 육신의 친척들에게 말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요한복음 7:7)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교회와 진정한 제자들을 향한 리트머스 시험지를 내어놓으신다. 지금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이 말이 해당될는지 궁금하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예수님은 한마디로 “너희들은 세상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여왔구나. 그래서 내 복음을 희석시켜버렸구나. 세상의 품에 푹 안겼구나. 그래서 세상의 친구가 되어버렸구나.” 야고보는 자신이 쓴 편지에서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4)

물론 예수님은 정치가들과 죄인들의 친구이셨다. 그렇지만 성경의 다른 부분에 보면 그는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히브리서 7:26) 라고 말하고 있다. 주님은 죄인들을 위한 사역을 하셨지만, 늘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마치 주님처럼,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않은 것이다.

왜 세상은 교회를 싫어하는가?

David Wilkerson

진정한 기독교인은 사랑과 평안과 헌신과 돌봄을 실천한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이들은 자기희생적이며, 겸손하고 친절하다.

우리의 상식은 당신을 사랑하고 축복하며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부자연스런 일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사람들은 우리를 함부로 대하고 우리의 것을 빼앗아가고 저주하는 사람을 미워한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그토록 미워하는 것일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만약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세상이 너희들 보다 나를 먼저 미워하였음을 기억하라…그들이 나를 핍박한 것처럼 너희들도 핍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5:18, 20) 그렇다면 왜인가?

교회는 교회의 사명, 즉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해, “주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이상인 바로 그 사명으로 인해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다.

아가페 사랑

Gary Wilkerson

예수님께서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는 마지막 교훈의 말씀을 전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그가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에서 시작됐다. 그는 이 질문을 세 차례나 하셨고, 그 때마다 베드로는 네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은 매번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21:15-17)

여기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랑이란 단어의 그리스어 아가페는 이타적이고, 희생적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이런 사랑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니가 나를 싫어한다해도, 나는 너를 사랑할 것이다. 만약 니가 나를 부인한다 해도, 나는 너를 사랑할 것디. 만약 니가 나에게 상처를 준다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나를 사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