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포도나무

Gary Wilkerson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한 마지막 밤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땅 위에서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요한복음 14:31). 제자들과 함께 떠나셔서 이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1-5).

하나님께서 우리의 공급자가 되십니다

Carter Conlon

제가 본격적인 목회를 하기 위하여 다니던 직장을 사임할 시기를 기억합니다. 그때 저는 은퇴계획으로 은행에 적정한 금액의 돈을 저축하였습니다. 저는 사실, 이 목회와 사역이 뜻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저축한 금액으로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역을 하는 어떤 친구 한 명이 제 사무실에 찾아와서는 말하였습니다. “목사님, 저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제 차의 엔진이 갑자기 망가졌고 저는 지금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저는 지금 교회에 갈 방법도 없는 상태입니다.”

불신으로 인한 악영향

David Wilkerson

매일의 상황 가운데,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믿지 못할때, 우리는 오직 우리 자신만 손해본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주님의 축복을 놓쳤다는 생각만 하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그렇게 넘어질 때마다 하나님은 속상해 하시며 노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경고를 하십니다. “네가 만약 나를 믿지 못한다면, 너의 마음이 강팍해질 것이다.”

히브리서에 기록된 바: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히3:8-11).

나의 입, 귀, 그리고 눈을 깨끗이 하소서

David Wilkerson

최근, 몇년간 알고 지낸 어느 한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목사님을 마주칠때마다 저는 제 와이프에게 늘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저 목사님은 너무 세상적이야. 얼마나 자랑을 하는지…어떻게 하나님이 저런 사람에게 축복을 내리시겠어.” 그러나 얼마 후 성령님께서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저를 다루시고 난 후, 그 목사님을 또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성령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를 사랑하라, 조용히 그의 말을 듣고 그리고 같이 기도하라.”

저는 성령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을 사랑했고, 그의 말을 들어 주었고, 그리고 그의 손을 잡고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런 다음, 서로 뒤돌아서자마자 저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깊은 슬픔에 시달렸습니다. 너무나도 큰 공포심이 저를 압도했습니다. 제가 지난 몇년간 그 목사님에게 한 행동들이 생각나면서 저에게 테러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지은 그 더러운 죄의 엄청난 사악함을 저는 보게되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께선 교회를 개척 하실까요?

David Wilkerson

만약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도시나 동네에서 교회를 개척하신다면, 어떻게 하실까요?

아마도 제일 처음으로 하실 일은 지역을 돌며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있기를,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눅19:41-42).

무엇이 예수님을 눈물짓게 만들었을까요? 그 눈물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성을 보시며 걸었던, 그 애달픈 걷기가 아니였나 합니다. 신앙심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비통해 하셨습니다. 그곳의 사람들은 진실을 버렸고, 죽은,형식적인 종교행위만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목자가 없는 양들일 뿐이었습니다.

SNAŽNE RIJEČI OD DUHA

David Wilkerson

Ako ste u Isusovoj crkvi, onda će od Duha Svetog dolaziti snažne poruke. Zašto? Jer Duh viče u nama protiv svega što mislimo, kažemo ili činimo što je od tijela. Isus kaže: "Iz srca dolaze zle misli, ubojstva, preljubi, bludnost, krađe, lažna svjedočanstva, psovke" (Mt 15,19).

Međutim, znak svakoga pravog Isusovog sljedbenika je da on predaje Kristu svaku riječ. Taj sluga voli ukor zbog onoga što on proizvodi u njegovu srcu. On vidi promjenu koju on donosi i zna da mu je to život.

하나님을 안다는것

Gary Wilkerson

모든 세대의 크리스천들은 그들의 임무나 행동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임무와 행동들인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린 끊임없이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주님과 이웃을 충실하게, 희생적으로 섬기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서서히 ‘나만의 축복’을 바라는 사고 방식으로 변하게 되었는가? ”

자본주의적인 기독교

David Wilkerson

미국은 “자본주의적 기독교”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신자 수, 건물, 헌금의 증가가 영적인 성장보다 더 큰 목표가 되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심판이 현재 많은 교회에 적용됩니다: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하는구나. 너의 눈먼 것이 너를 미지근하게 하는데 그것조차 보지 못하는구나. 아직 나를 향해 뜨겁다고 생각하는구나!” (계 3:15-17 참조)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과 친밀함을 잃는 죄를 지었습니다. 두아비라 교회는 분별력을 잃고 영적인 간음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라오디게아 교회는 가장 큰 죄에 빠집니다: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결국 벌거벗음으로 끝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벌거벗은 상태를 비난하셨습니다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3:18). 그리스어로 벌거벗음은 “풍부한 자원에서 벌거벗겨지다”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을 위해 그분의 자원을 보호하십니다. 그 자원이 무엇입니까? 진정한 영적인 풍요인 주님의 능력, 기적을 행하는 힘, 가르침, 임재를 뜻합니다.

거짓 목자

David Wilkerson

두아디라 교회의 문제는 음행하고 악한 세력들을 용납한 것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었을 때 목회자의 반응을 상상해보십시오: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계 2:18).

편지는 적당한 칭찬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2:19). 다시 한 번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행위를 안다. 사랑, 믿음, 섬김이 처음보다 많구나.” 무엇보다 큰 것은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안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처음 친밀함을 잃었다고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꿰뚫어보는 말씀을 읽게 됩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20).

예수님 임재의 상실

David Wilkerson

요한 계시록 2장에서는 에베소 교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잃은 것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봅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사회 복지과에서 일하거나 봉사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는 일에 진실되고 헌신적이지만 매일 벌어지는 현실은 감당하기 너무 큰 고통입니다. 기독교인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역자들도 보살피는 사람들의 죄나 고통을 많이 보기 때문에, 마음이 굳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에베소에 있는 목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는 한때 다른 이들에게 친절했었다.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을 향한 사랑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귀가 먹어버렸구나. 그들과 함께 앉아있지만 그들의 눈물에 동정을 보이지 않고, 사역 하지만 생명 없이 쳇바퀴 도는구나. 너에게서 내 임재를 거두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