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David Wilkerson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교회를 위하여 생명을 내어 주셨으며,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저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주춧돌이 되시며 또 그의 영광과 지혜가 교회에 임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을 보내셔서 교회를 설립하시고 또 교회를 세우시기 위하여 기름부음 받은 일꾼들을 – 목사로, 교사로, 사도로, 선지자로, 또 복음전하는 자로 – 삼으셨습니다. (엡4:11-12)

주님께서 교회를 축복하기 원하신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왜 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을 무시무시한 장면으로 기록해오고 있을까요? 요한은 기록하기를 예수님께서 불꽃같은 눈과 우뢰같은 음성으로 그의 교회에게 찾아 오신다고 합니다.

절대적은 믿음을 개발하다

David Wilkerson

우리는 시련속에 있을 때, 그 문제에서 눈을 돌려야 합니다. 이런시기에는, 우리자신에게 이런 격려의 말이 필요합니다. “나의 주님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끔찍한 시련을 당하는 동안, 그는 나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도 나는 압니다. 상황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모든것은 주님의 지배안에 있습니다. 어느누구도, 그 어떤 능력도, 나를향한 그분의 계획을 바꿀수 없습니다.”

혹시 지금 낙심하고 있습니까? 이런 생각들로 힘들어 하고 있습니까?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어. 이 시련을 이겨낼 수는 있을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이렇게 고통속에 머물러야 할까? 주님, 제가 다시 기뻐할 수 있을까요?”

여기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약5:11)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42:10).

주님앞에서의 진실함

Gary Wilkerson

매우 작은 결정에도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어떤 상표의 치약을 사야 할지 알고 싶다면, 하나님께서는 치약 상표 이름 대신 아마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매일 매일 잊지 말고 양치질을 하여라.” 이처럼 모든 것에 하나님의 뜻을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것들이 이미 성경에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저는 터키에 갔었습니다. 이라크 국경 근처에서 벌어진 난민사태를 보며, 월드 챌린지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난민들이 ISIS의 난폭한 학대를 피하여 터키 국경으로 도망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탑깝게도 이 지역엔 UN군의 도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가진 것이라곤 입고 있는 옷 밖에 없는 수많은 난민들이 모여드는 곳이였습니다. 부모가 지뢰 폭파로 사망하시는 모습을 직접 본 한 아이와도 대화를 나누어 봤습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트라우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산

David Wilkerson

이사야는 사탄의 굴욕을 이미 보았습니다. 사악한 영들이 능력과 자신감을 하나님 앞에서 잃는 것 또한 보았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모압이 거름물 속에서 초개가 밟힘 같이 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 (사 25:10).

이사야는 사단의 굴욕이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기도와 찬양의 장소인 산에서 일어난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여기서 모압은 이스라엘의 진짜 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악한 사단을 대변하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이사야의 환상이 예루살렘의 교화에 이미 일어나고 있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행 3:18-19). 베드로는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이루어지는 날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임재로 새롭게 되는 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때에

David Wilkerson

곧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능력과 임재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주님께 회개와 용서, 말씀, 기도로써 온전히 돌아온 사람들은 그들의 눈물이 기쁨으로 변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지금 자유 된 사람들의 눈물이 방대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수 세기에 걸친 사단의 억압에서 풀어진 사람들이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그들의 구원자를 찬양합니다.

이사야는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할 때 울며,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사 25:9)라고 예언했습니다. 이사야는 자신이 본 것에 너무나 기뻐서 놀라움으로 거의 심장이 터져나갈 지경이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사 25:8). ‘수치’라는 이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근간을 찾으면 “꾸짖다, 망신을 주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꾸짖고 창피를 주는 사단의 능력을 뜻합니다.

마지막 날을 위한 기적

David Wilkerson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25:7).

여기에 놀라운 두 예언이 있습니다. 처음은 이스라엘인에 관한 것입니다. 이사야가 말한 덮개는 모세의 때부터 이스라엘인의 마음을 가리고 있는 영적인 무지를 뜻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무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고후 3:16).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롬 11:25-26)

바울은 이사야가 이스라엘인에 관해 ‘구원자가 무지의 덮개를 제한다’는 예언을 했다고 믿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롬 11:30). 여러분, 이 예언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눈이 띄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잡지도 유대인이 예수님을 다시 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임재

David Wilkerson

여러분의 집을 방문하시는 분이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하십니까? 그의 거룩한 향기가 여러분의 가정, 결혼생활, 관계 속에 스며있습니까? 가족의 중보의 눈물,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진실한 마음이 있습니까? 아니면 육이 다스립니까?

모든 기독교인의 가정은 고결한 곳이어야 하고, 세상과 육에서 떨어진 산이며, 예수님과 함께하는 거룩한 잔치가 벌어지는 곳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가정에서 찾을 수 없는 이유는 불결한 것들로 더럽혀졌기 때문입니다. 선정적이고 비열한 사악함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하여 허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임재를 일궈야 하는 가정에서 이러한 악이 존재하는 것을 마주하는 천사는 얼마나 아연실색하겠습니까? 지금 많은 크리스천들이 외설적인 비디오를 빌리고, 텔레비전의 타락에 젖고,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영화에 돈을 들이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그들의 가정에 영적인 죽음이 맴도는지 궁금해합니다.

안내자

Gary Wilkerson

수년 전에 친구들과 함께 텍사스주 샌안토니오라는 도시에 있는 알라모 요새를 보러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일행 중의 한 친구의 고향이 마침 샌 안토니오여서 가이드를 하며 길 안내를 하겠다고 자청했습니다. 하지만 도시에 도착하자, 같은 상점이 세 번이나 돌며 무언가 잘못되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계속 같은 자리를 도는 것 아니야?”라고 누군가 물었습니다. 그 친구는 “아니야, 거의 다 왔어”라며 우리를 안심시켰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교통체증이 걸리는 곳으로 들어선 것을 알게 되었고, 마침내 누군가가 그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네가 이 도시를 잘 아는 줄 알았어. 고향이라고 했잖아?” 그 친구는 “맞아, 하지만 내가 두 살때 이사를 가버렸어”라고 대답했습니다.

분명히 마이클이라는 친구는 이상적인 안내자가 아니었습니다. 의도는 좋았지만, 저희를 어떻게 안내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그는 우리가 살면서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만족스러운 삶과 반대되는 곳을 맴돌게 하는 안내자를 연상시킵니다.

놀라운 연회

David Wilkerson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이사야 25:6).

이 구절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러한 놀라운 연회가 예수님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울거나, 공포에 젖어있거나 패배하고 스트레스로 지쳐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을 먹으며 연회를 즐기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 연회를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마지막 때에 이러한 축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최고의 와인은 마지막을 위해 남겨두었단다. 그래서 지금 나의 백성들에게 부어줄 것이다. 나의 임재 안에서 나의 백성들이 놀랍고 즐거운 것들로 연회를 즐기게 할 것이다.”

마지막 때에

David Wilkerson

현재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늦은 비”의 때에 살고 있으며 현재 하나님의 계획들이 실현되고 있습니다. 온 세계에 걸쳐 사탄의 도시의 높은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러시아 그리고 동유럽 국가들을 생각해보고ㅡ독일의 장벽은 말 그대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수 만명의 사람들이 한때 사탄의 포박 속에 살았지만 이제는 자유함을 얻었고 그들이 처음으로 복음을 접하게 됩니다. “강한 민족,” 즉 죄에 무뎌졌던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자, 우리는 현재 아주 특별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50년 이상 사역하면서도 보지 못해왔던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제 사역팀이 나이지리아에서 전도성회를 하는데, 하루에 500,000며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이 보다 더 절박해진 것이 보였습니다. 제가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