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전에 닥친 불가능

David Wilkerson

가데스 바네아는 목전에 닥친 불가능 같은 장소였습니다. 그 이름도 히브리어에서 어원을 찾으면 피난자, 방랑자 또는 나그네였습니다. 다시 말해, 그곳에서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평생 광야에서 헤매게 된다는 뜻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지금 그곳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계약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놀라운 시간 속에 구원의 기적을 잇달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거짓말과 함께 와서 그들에게 가능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자격이 충분하지 않다고 믿어버리고는, 하나님이 과거의 지은 죄에 아직 화가 나 있으며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해보십시오. 이런 거짓말을 믿고 계십니까? 당신의 환난 속에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삶 속에서 말씀의 하나님을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사실이 당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마주하는 시험이 남은 여생을 결정할 단서가 될 것입니다.

비극적인 실수

David Wilkerson

모세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저지른 비극적인 실수에 대해 묘사합니다. (민13-14장 참조) 그것은 홍해를 건넌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담대히 가나안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고 능력 확신의 말씀도 주셨습니다:“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 . .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신 1:21, 29-30).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적군 그 누구 하나도 그들 앞에서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신 7:24 참조).

불신의 위험

David Wilkerson

신명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신의 위험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앞서 넘어진 사람들같이 위험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 4:11). 요약해서 말하면, “어떠한 불가능해 처해 있던지,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에 있던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시 예전과 같은 불신의 죄로 빠질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처했듯이 끔찍한 광야에 다다를 것이다. 그리고 남은 평생 그곳에서 헤매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그 뜻에 따라 우리 아버지들을 위기 속으로 데려가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도록 가르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광야에서 나왔을 때 정금같이 순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선하신 것을 온 세상이 볼 수 있도록 이스라엘 백성을 증거 삼고 싶어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본보기

David Wilkerson

신명기 전체는 모세가 죽기 전에 전한 설교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설교는40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보낸 시간을 뒤돌아보고 그것은 새로운 이스라엘 세대에게 전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장소인 가데스 바네아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들의 아버지가 38년 전에 서 있었던 약속의 땅, 가나안의 경계에 있었습니다. 그곳은 역시 하나님께서 구세대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 곳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에는, 구세대가 다 죽을 때까지 그들은 광야로 다시 보내졌습니다.

이제 모세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들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상기시킵니다. 어떻게 구세대의 아버지들이 하나님의 눈에 반역자로 비치어 죽었는지 알기를 원했습니다. 모세는 윗세대의 비극적인 실수를 통하여 아랫세대들이 배우기를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너는 너희 아버지의 역사를 알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고 선택받았으며 기름 부어졌다. 주님께서 그들은 너무나 사랑하시어 시간이 지나도록 그의 팔로 품으시고 옮겨주셨다.”

은혜로 인한 변화

Gary Wilkerson

예수님은 사역기간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두 가지 종류의 질문들을 받게됩니다. 첫 번째는 고발하는 종류의 질문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왜 죄인들과 같이 먹고 마십니까? 그런 평판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할 수 있습니까?”

삶의 문제들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오는 질문이 두번 째 종류입니다: “아픈 제 딸을 고칠 수 있습니까? 귀신 들려 불에 뛰어드는 제 아들을 축귀할 수 있습니까? 평생동안 고통을 준 이 혈루병으로부터 고칠 수 있습니까? 예수님, 저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이 두 종류의 질문간에 차이점이 보입니까? 둘 다 하나님의 성품을 찾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죄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자격이 있는가?”이고 두번째 질문은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려 하실까?”에 대한 것입니다.

기도를 배우는 것

Jim Cymbala

기도는 사실 원리, 규칙 또는 세미나를 통해서 배우거나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필요와 갈급함으로부터 나옵니다. 만약에 제가 “기도를 해야겠다”고 말하고 기도를 하기 시작하면, 육신의 것이 너무 크고 강력하기 때문에 기도하고자 하는 동기가 금새 없어져 포기하고 말것입니다.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부정”하는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언젠가 제 자녀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말하는 부모들은 사실은 이미 포기한 상태로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입니다. 우리 아이가 올바르지 않은 길로 갔고, 부모로서 나는 노력했습니다. 아이가 어렸을때 세례도 받게하였고.. 뭐 언젠가는..”

우리가 기도하면 할 수록 우리는 기도에 대한 필요와 갈급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에 더 갈급할 수록 더욱더 기도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가 나의 귀를 깨우시다

David Wilkerson

영국제도에 설교를 하러 가기전까지, 제가 오염된 귀로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와 제아들 게리를 태우고 다음 설교장소로 운전하시던 한 목사님이 저에게 예배반응에 대해 정중히 물어보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답을 하려고 하면 본인의 이야기로 제 말을 가로막아 버렸습니다. 대화도중 매번 이런일이 벌어졌습니다. 제 얘기에 한술 더 떠 본인의 예배엔 더 많은 성도들의 참석과 더 많은 곳을 여행해봤다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결국, 전 그냥 입을 닫고 그분의 말을 듣기로 했습니다. 제 아들 게리를 보고 눈을 굴리며 생각했습니다. ‘자랑을 쉴새없이 하는걸 보니 정말 거만한 분이시구나.’

그 순간 저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데이빗, 네가 왜 화가 났는지 생각해 보아라. 너의 말을 듣지않아 화가 난것이 아니라 저분의 자랑에 너도 똑같이 너의 사역을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냐! 비록 네가 자랑하지 아니해도 너의 마음속엔 거만의 영이 존재하고 있단다.”

오염된 귀들

David Wilkerson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사 50:4-5).

마지막 구절을 보면, 매일 아침 성령께서 예수님을 깨우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기 위해 성령이 그의 귀를 맞췄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라고 간증하실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내가 이세상에 있었을 때는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 하고, 어떤 것을 들어야 하는 지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를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매일 이런 영적인 모닝콜이 필요합니다. 성령님께서 저를 매일 이렇게 상기시키시기를 원합니다. “데이빗, 모든 비방하는 소리, 험담,그리고 음란한 말로 부터 귀를 닫고 네 자신을 더럽히지 말거라.”

헛된 말들

David Wilkerson (1931-2011)

부정한 말에 어떤 책망이 따르는지는 시편50편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시50:19-23)

그럼 우리는 왜 이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거나 신뢰하지 못합니까? 왜 우리는 남에게 쉽게 헛된 말들을 할 수 있습니까? 왜 계속해서 경솔하게 말하며 혀를 통제하지 못합니까? 그이유를 시편은 말합니다.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같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남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여길 수 있도록 우리는 성경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깊은 곳에 숨어있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행하신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최악의 강도질

David Wilkerson

야곱이 교회에게 경고합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약3:6).
이사야서에서도 비슷한 경고를 읽을 수 있습니니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사58:9). 여기서 허망하다는 무례한, 불손, 결례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이사야 선지자는 매우 놀라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금식하고, 성경을 읽는 이유는 우리의 말이 천국에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여기에 조건을 붙이십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것 같습니다. “만약 너희 말을 내가 듣기 원한다면 먼저 너희 자신을 되돌아보아라. 내가 듣겠노라 .만약 네가 남에게 손가락질을 안한다면. 내가 듣겠노라. 만약 네가 남을 비난하지 않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