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임재 가운데

David Wilkerson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단둘의 시간 가운데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곧 예수는 기도 가운데 아버지의 모든 격려와 예언의 말씀을 들으신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께 청원하고, 예배하며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이적을 행하신 후, 말씀을 가르치신 후, 또한 바리세인과의 논쟁 후 곧 예수는 다시 아버지와의 은밀한 교재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를 마태복음 14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침례 요한의 사망 소식을 들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마 14:13) (저는 혹시 예수께서 침례 요한이 수년을 지냈던 그 빈들로 가신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예수는 거기서 홀로 기도하시며 요한의 죽음을 깊이 슬퍼하셨습니다. 침례 요한은 사랑하는 친구였고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아버지와의 교재 가운데 예수는 은혜를 구하셨고 또한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예수는 다음 날 행해야 할 지시를 받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부터

David Wilkerson

예수는 공생애 동안 아버지의 음성을 날마다 의지하셨습니다. 항상 그 음성의 지시를 따라 아버지께 순종하셨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예수께서 하신 모든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매 순간, 이적을 행하실 때 마다, 그리고 날마다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떻게 아버지의 세미한 소리를 들으셨을까요? 성경은 기도를 통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차례 예수는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 하셨습니다. 무릎을 꿇은 가운데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것을 반복하셨고 아버지는 그때마다 신실하게 무엇을 행하고 말해야 하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 1:3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 5:15~16)

주님 가신 길을 따라

David Wilkerson

예수는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온전히 하늘의 아버지만을 의지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 주는 영광 가운데 계신 아버지의 동의 없이는 어떠한 행동과 발언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오직 아버지의 지시하에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요 8:28~29)

예수는 날마다 아버지의 인도 하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셨습니다. 그의 하루하루의 삶은 아버지를 의존하며 그의 음성을 듣는 것의 연속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의 기록 중 예수는 안식일 베데스다 못에서 누워있는 다리 저는 자를 보셨습니다. 예수는 그에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명하시고 그는 곧 나아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혜택은 결국 우리에게

Gary Wilkerson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은 자신이 아버지와 맺은 언약들을 이루기 위해 하신 것들입니다. 길잃은 양들을 찾으셨고, 눈먼 자를 보게 하셨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갇힌 자들을 푸시고 영생의 말씀을 선포하며 이적을 행하시고 귀신을 쫓고 병든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이런 모든 복음서의 구절 구절 들은 아버지께서 예수를 보내신 목적을 이루시는 순간들입니다.

이 모든것을 통하여 예수는 아버지의 말씀이 응하게 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이사야 49:5).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히브리서 2:13). 아버지의 신실하신 말씀으로 예수는 고통스런 죽음의 순간도 견디실수 있었습니다.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사야 50:5~6)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반석

David Wilkerson

구약성서 다니엘서를 보면 우리가 말세의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어 끝날지 보여줍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꿈을 꾸었고, 다니엘은 해몽을 하였습니다: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다니엘 2:31-33).

왕은 사람의 형태를 띤 밝고 번쩍거리지만 끔찍한 이미지를 보았습니다. 그 몸통은 단단한 쇠로 만들어졌지만 그의 발은 진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다니엘은 이 이미지가 이 세상의 나라들을 의미한다고 하였고, 진흙은 세상의 마지막 권력의 나약함을 뜻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나라들은 말세가 다가올수록 점점 어두워지고 끔찍해질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

David Wilkerson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린도후서 11:3).

바울은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멀어지지 않기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진실함”이라는 단어는 성실함, 진심, 그리고 독점적인 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는, “그리스도는 복잡한 어떤 개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은 아주 단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고, 신성하시고, 성령으로 잉태하사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으며,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죽으신 이후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의 진리로부터 떠나 부패해버릴까 걱정입니다.”

사탄의 “사랑의 함정”

David Wilkerson

마귀가 세상의 교회에 악한 메시지를 퍼트릴 때, 미적지근한 믿음의 크리스천들은 모두 속아버릴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합리화 시킬 것입니다. “모든 교회들은 다 괜찮을 것이야. 그 교회들의 리더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말하고 다니는데… 예수님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말하고 다니는 교회는 믿음이 좋은 진짜 크리스천 교회일 것이야.”

그들은 상당히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악한 만트라(기도 또는 명상 때 외우는 신념이 담긴 주문)는 바로 “예수, 예수, 예수” 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복음주의 단체의 리더들은 벌써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왜 모든 단체들이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없습니까? 결국에는 유대교도 예수를 선지자로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무슬림들도 예수를 선한 사람, 훌륭한 선생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시크교도 그리고 힌두교도들도 예수님을 존경합니다.”

최후의 전쟁

David Wilkerson

지금 이전쟁의 쟁점은 예수님의 신성(神性, divinity)입니다. 그가 진정 그리스도인가? 그가 진정 인류를 구원할 하나님의 독생자인가? 아니면 그저 선한 일을 하는 또 하나의 선지자일 뿐인가? 그는 신이 아닌,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아니던가?

사도바울은 사도행전에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하여 간증하였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 베드로 또한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능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땅 위에 영생을 주는 이름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메시야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Gary Wilkerson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지옥으로 가지 않도록 구출 작전을 세우셨습니다. “주께서 이상 중에 주의 성도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돕는 힘을 능력있는 자에게 더하며 백성 중에서 택한 자를 높였으되”(시편 89:19).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류가 점점 죄로 인하여 연약해 지고 비참해져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을 못 찾고 있다. 그리하여 나의 거룩한 아들을 보내어 그들을 나에게로 돌아 올 수 있는 길을 내어 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 하셨을 것 같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시편 40:8).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서 하신 모든 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요한복음 12:49).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들

Jim Cymbala

역대상 11장 22절을 보면, 다윗의 위대한 용사 중에 모압 사람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여 공훈을 세운 브니야가 소개됩니다. 그는 눈 올 때 함정에 내려가 사자를 죽였으며, 키가 2.5m가 넘게 큰 애굽 사람을 놀랍게도 막대기 하나로 그의 창을 빼앗아 죽입니다. “애굽 사람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죽였더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므로… 삼십 명 중에서는 뛰어나나 첫째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니라 다윗이 그를 세워 시위대장을 삼았더라” (대상 11:23-25).

이 시대의 사람에게 명예를 주는 것은 박사학위가 아니었습니다. 명예는 돈이나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꼭 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명예는 왕을 위해 공훈을 세운 결과로 따라오는 부산물이었습니다.

누가 오늘날 하나님께 공훈을 세웁니까? 사단이 어디로 몰려 후퇴하고 있습니까? 영적인 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깔끔한 설교로 사람들을 사로잡거나 매끄러운 조직능력을 갖추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름 부음으로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는 위대한 사람들은 어디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