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멸렬한 일상을 목적을 가지고 걷기

Carter Conlon

우리 이사야서를 봅시다. "그는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이사야 40:29-30). 다른 말로하면, 계절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에 더이상 못버티겠다 느끼는 계절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마치 사고를 내버릴 것 같고, 방전되어버린 듯 느껴지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추위가 마음 속에 스며드는 계절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일상 생활의 단조로움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능력을 보장받음

David Wilkerson (1931-2011)

예수님께서 그의 마지막때를 그의 제자들과 보내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요한 16:23). 그리고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16:24).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이십니까! 이 말씀을 하실 때는,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그가 떠나가실 것을 경고하시며 한동안 그들을 볼수없을 것이라 말씀하셨던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시에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시며 그들이 곧 천국의 모든 축복에 접속할 수 있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만 그들이 해야 할 일은 그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뿐이라 하셨습니다.

불신이 자리잡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David Wilkerson (1931-2011)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히브리서 3:8-11).

도데체 어떠한 이유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의 안식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일까요? 간통이나 탐욕 혹 술 취함때문이었나요? 그렇지않았습니다. 그것은 오직 불신(믿지못함)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40년 동안 수많은 기적들과 또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위해 행하셨던 초자연적인 역사를  경험해온 나라였습니다. 사실, 지구상의 다른 어떤  이들도 그렇게 사랑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그렇게 자상하게 보살핌을 받아보지 못했죠.

하나님의 약속하신것을 언제 믿으시려 하십니까?

David Wilkerson (1931-2011)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늘 불평하는 크리스천들이 있지않습니까?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비하하며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생각합니다. "난 절대 그사람과 같질못해. 나는 가망이 없어."

여러분은 구약 성서에 나온 약속의 땅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의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돌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맞아요. 그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에요. 그러나 그 땅 거민은 모두 거인이고 그들의 성은 견고하고 큰 성읍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대항해 무찌르는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보면 됩니다. 그들과 비교하면 저흰 꼭 메뚜기 같아요!" (신명기 13장 참조). 

지금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능력이 없습니다. 그는 별로 힘이 없으십니다. "말한적이 없습니다.그들은 감히 그런 불신앙을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대신에, 그들은 자신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말합니다."우리는 적의 관점에서 볼 때 쬐끄만 벌레에요."

사탄이 노리는것을 격파하는 기도

David Wilkerson (1931-2011)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8).

성경은 이 마지막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격분하여 흥분한 사탄의 노여움을 직면 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사탄은 자신의 시간이 짧다는것을 알고있기에  더욱더 하나님의 백성을 삼키려 전념을 다하고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12:12 참조). 사탄은 어디에 그의 노여움이 향하게 할까요? 그는  세계방방곡곡의 가정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의 목표는 단순합니다. 그가 할수있는 모든것을 총동원해 모든 가정에 절망과 파멸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탄에대해 아래와 같이 말씀하시며 가정을 파괴한 사탄의 역사도 함께 언급하셨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요한복음 8:44). 실제로, 우리는 최초의 가정에 대한 우리대적의 파괴적 계획을 봤습니다. 카인에게 들어가서 그의 형제인 아벨을 살인해야한다 확신을 준 것도 바로 사탄이였습니다. 

당신을 제한하는것이 무엇입니까?

Gary Wilkerson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고후 6:11) 바울은 새로운 전기를 시작하는 시점에 서있는 교회에게 말합니다. 그들은 선하고 영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또한 시험과 어려움도 당한 교회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이것은 이것을 읽는 여러분 모두가 이것을 읽지못하는 이들과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것인데요. 바로 소위말하는  육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의 최선의 계획으로부터 여러분을  끌어내리는 주범이되죠.

고린도의 교회는 이것으로 가득차 있었는데요. 바울은 이것을 육욕- 성적 부도덕,그들안에 분열-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한편 그들을 향한 그분의 마음이 활짝 열려있음을 상기시켜줍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얻는 법

Jim Cymbala

하나님의 축복을 얻는 중요한 비밀중 하나는 주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의 마지막 가르침을 마무리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작별의 인사말을 할때  특별한 명령을 주었습니다."세번째 연도 십일조" 라 불리는 것이었죠. 정규 십일조 또는 10 % 연례 헌금외에, 세번째 연도 십일조는 다른 목적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 14:28-29).

오직 그를 부를때

David Wilkerson (1931-2011)

교회의 초기사엔 엄청난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 끔찍한 시대에 사도 요한은 포로의 신분으로 로마로 보내졌고 그후 밧모 섬으로 추방되어 그곳에서 죽게됩니다. 밧모섬은 그 곳으로 추방된 몇명의 포로들만이 거주하는 작고 황폐한 섬이었습니다.

요한이 밧모섬에 상륙하였을 때 그는 마치 좌초된듯 버려졌고 고립된 상태였습니다. 그는 후기 서신서를 통해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계 1:9).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의 제자였던 요한은 이러한 형을 받게 된 것일까요? 그리고 왜 세계의 절대 지배세력인 로마제국이 필사적으로 그를 문명으로부터 격리시키려 했던 걸까요? 분명 로마는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서 확실히 알려져있던 그를 위협이라 정의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지시는 종

David Wilkerson (1931-2011)

다니엘의 증언입니다.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다니엘 10:10).

여기서 "어루만지다" 란 말은 원어의 뜻은 "격렬하게 붙잡다"를 가리킵니다. 다니엘이 말합니다. "급작스럽게 하나님께서 그의 격렬한 손길로 나를 붙잡아 내 얼굴을 덮으시니 그를 내 전심으로 구하기 원하는 절박함으로 나를 채우쳤다." 

하나님이 만지시는 종들은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들은 하늘의 계시 (나타내심) 를 받고 몇몇 다른이들처럼 그리스도와의 동행을 누립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의 인생을 만지시면 그 사람은 무릎으로 엎드리게 되고 그는 주님을 열정적으로 구하는 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전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하나님께선 왜 오직 몇몇 특별한 사람들만 만져주시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왜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갈급하게 구하는 자들이 되고 또 다른 믿음의 사람들은 자기갈길로 가버리게 되는 걸까요?

하나님이 행동하라 부르실때

David Wilkerson (1931-2011)

믿음의 기도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그러나 이 기도와 상반된 오히려 육에 기초한 불신의 기도도 있습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께 용납받지 못합니다. 성경은 이 기도가 그의 눈에 악하다 말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사람이었던 모세는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 나선후 그의 걸음마다 위기를 맞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바로왕에게 추격당하게되자  군대를 피할길이라곤 홍해를 지나는 것외에는 없었습니다. 모세는 이 위기 역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임을 마음으로 알았지만 공포에 휩싸인 수천 수백명의 절규가 귓가에 울리자 홀로 외딴 언덕비탈에 가서 큰소리로 기도하며 그의 심정을 쏟아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그의 밤을 새운 울부짖음을 관대하게 받아주시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이 그의  불신의 뿌리에 근거한 기도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