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의 원천

Carter Conlon

에덴동산에 들어오게 되었을때 사탄은 하나님을 향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마음을 모두 주신 인간을 파괴하고자 시도 할때마다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죠. 결국 악마는 인류에게 스스로의 자멸을 초래할 한가지 생각을 심어주었습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입니다.

사탄이 아담과 이브를 유혹한 사건 후에 하나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03:14-15).

교제를 간절하게 바라시는 그리스도

David Wilkerson (1931-2011)

예수님께서 갈릴리지방으로 향하시던 중 그는 사마리아의 야곱의 우물이란 곳에 도착하셔서 여정중의 휴식을 취하시고 계셨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나간 사이 한 사마리아여인이  물을 기르려 우물로 왔습니다. 예수님께선  단순한 부탁을 하셨습니다. "물을 좀 달라" (4:7).

그리스도께서 여인에게 던진 이 한마디 말은 긴 대화의 물꼬를 텄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 중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해준 이야기들로 그녀는 놀라워 했습니다. 막바지에 다르자 그녀는 이렇게 종결지으려합니다.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요한 4:25-26). 

하나님을 외면하는 죄를 범하고 계신가요?

David Wilkerson (1931-2011)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만든 전이나 건물에 거주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신 우리 주님께서는 인간이란 토기안에 살기로 선택하셨습니다. 바로 그의 사람들의 심령과 몸 안에서 말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확신하며 자랑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안에 거하십니다." 물론 주님께선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보혈로 정결케된 심령은 그분이 영구히 거하실 곳이라 하셨습니다.

언제부터 하나님이 우리 안에 머물게 되셨을 까요? 우리가 처음  우리의 마음(심장)을 예수님께 드렸을때 그분이 오셨습니다. 바로 그때부터 그리스도의 지속적인 임재하심이 우리의 존재를 풍성하게 채워왔습니다. 그가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요한 14:20, 23).

위기 가운데 있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응답

David Wilkerson (1931-2011)

이 혼란의 시대 가운데 교회는 어디 있습니까? 교회는 종교적인 활동을 하느라 바쁘지만 대개 육적인 것입니다.너무나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면 우리 주님께선 늘 이 혼란한 세상을 위한 치료약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죽어버린 타락한 교회를  깨우시기위하여  여러세대를 걸쳐 임상실험을 마친 그분의 치료책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선택된 남자와 여자를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선 개인들을 사용하셔서 혼란에 빠진  세상에 응답하십니다. 첫번째 그는 기적적으로 그들을 변화시키신후 그분의 뜻에 온전히 헌신할 삶으로 부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만지신 종들은 시편 65:4에서 가장 잘 서술되어있습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왜 요나는 도망쳤을까요?

David Wilkerson (1931-201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요나 1:1-3).

우린 하나님께서  니느웨라는 도시에 심판의 메세지를 전하라는 명령을 내리시자 주님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요나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니느웨에 경고의 메세지를 하기는 커녕 도망쳤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증거삼아 언급하시기도 하였습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 속에 있었던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마태 12:40) 즉 요나의 이야기는 그리스도 자신의 매장과 부활만큼 반드시 있어야 했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기초를 둔 믿음

Gary Wilkerson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은 재산, 지위,자신이 가진 것--더나은 집과 차 ,직장 또 행복한 가정, 늘어나는 수입과 같은 것으로 하나님의 총애를 정의하곤 합니다. 저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그러한 면으로 총애를 베푸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바라시는 것에서 벗어나 다른 무언가를 위해 살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Jim Cymbala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기위해 어떻게 해야할까요? 정말 그런 비결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게 무얼까요? 감사하게도 정말 우리를 가이드해 주는 분명한 성경적인 지침이 있습니다.주님이 주시는  분명한 지침사항 첫번째는 그의 부으실 풍성한 은총을 기도로 간구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야베스가 그의 세대에서 그들과 달랐던 것이 무엇입니까?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역대상 4:10).  

야베스는  하나님의 축복이 없이 산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강렬한 문체를 보십시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그의 기도는 단순히 이성적인 기도를 넘어서  그 위로 하늘이 열리지 않으면 살아낼 수없다는 깊은 영혼의  외침이었습니다. 

내려놓다: 예수님께 돌려드리다.

David Wilkerson (1931-2011)

내려놓다. (Surrender): 문자적으로 내려놓는다는 뜻은 다른 이에게 어떠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또한 당신에게 주어진 무언가를 양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소유물,재산,권세,목표 어쩌면 당신의 삶일 수도 있겠죠.

그리스도인들은 내려놓는 삶에 대해 많이 듣습니다.그러나 정말 내려놓는 삶은 무엇일까요? 내려놓는  삶이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예수님께 돌려드리는 삶의 행동입니다.이는 내 인생의 권리에 대해 완전히 사임하고 그가 바라시고 기뻐하심에 따라 나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내려놓는 삶을 사셨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 (요한 6:38). 그리스도께선 절대 자기 뜻대로 하신 것이 없습니다.그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명하시지 않은 어떤 행동도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한 8:28-29).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것

David Wilkerson (1931-2011)

예수님께선 이땅에 계실때 전적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의지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의 구세주되신 주님은 그의 영광의 아버지께 이야기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려하지 않으셨고 무엇도 말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에게 명하시기 전까진  어떠한 기적도 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선포하셨습니다. "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 28-29)

그리스도께서는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의존을 실천하는 것이 그의 매일의 삶속에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광경을 요한복음에서 만날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선 베데스다 못 근처에 오랜동안 누워있던 불구의 한 남자를 보시자 그에게 돌이키사 그의 침상을 들고 걸으라고 명하십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 남자는 온전케 되었고 모두 나아 그곳을 걸어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믿음이 자라다.

David Wilkerson (1931-2011)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8:8 에서 이 질문을 던지십니다."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 저는 늘 이 질문이 난해하게 느껴졌습니다. 주님이 무슨 의미로 이런 말씀을 하신걸까요? 전 오늘 날의 교회를 돌아보며 우리시대처럼 믿음에 초점이 맞추어진 시대가 또 있을까 생각합니다.

모든 이들이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믿음에 관한 세미나와 컨퍼런스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립니다. 기독교 서점의 진열장에서도 믿음이란 주제의 섹션은 따로 마련되어져 있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믿음 설교자, 믿음 강사,  믿음 운동 심지어  믿음 교회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늘 날 믿음이라고 여기는 것은 전혀 믿음이 될수 없는 것들입니다.하나님께서는  오늘날 믿음이라고 불리며 실행되는 믿음의 대부분을 거절하실 것입니다.그는 말할필요도 없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그것은 부패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