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충만한 영광과 은혜

Gary Wilkerson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영광은 그리스어로 “doxa” 라는 단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doxa”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수많은 교회에서 불려지는 독솔로지(The Doxology, 대영송)의 어원입니다.

요한은 “kavod”라는 히브리어를 사용하였고, 그 단어는 “doxa”로 번역되었습니다. 히브리어 “kavod”는 중요한, 실질적인, 강렬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중요성, 의미 그리고 열정 등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가벼움, 이기주의에서 당신을 분리시켜 거룩하게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세상은 당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이라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의 삶을 행복하게만 하는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의미 있게 변화시키고 참된 목적으로 인도하시는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섬긴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분 계획으로부터의 탈선

Nicky Cruz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정해놓으신 경로를 우리가 탈선한다면, 그분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이 주제에 대해 많은 사람이 저와 논쟁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준비해놓으신 구체적인 역할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독특한 은사와 재능, 그리고 열망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러한 은사와 상응하는 개별적 언약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예레미야 29:11) 하나님께는 그 어느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지으시기도 전부터 우리가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당신과 나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지음 받았고,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은 그 목적을 우리가 수용하는 것입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David Wilkerson

“예수께서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마가복음 9:25)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후, 그 소년은 죽은 것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그가 일어서니라.” (27절)

이 고침 받은 소년을 상상해 보십시오! 정결케 되고 자유롭게 된 이 소년은 그의 아버지께로 달려가 안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비의 마음은 기쁨으로 뛰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온전케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성령께서는 마가로 하여금 이 이야기를 그의 복음서에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저는 바로 그 순간부터 모든 부모가, 그들 자녀에게 불가능을 가능케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나는 무엇이든지 그리고 누구든지 회복시킬 수 있다. 만일 네가 믿기만 한다면, 나를 통해서 모든 것들이 네게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분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David Wilkerson

마가복음 9장에서는, 귀신 들린 아들을 가진 한 괴로워하는 아버지가 아들을 고침 받게 하기 위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습니다. 이 소년은 단지 문제가 있거나 반항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악한 영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악한 영들은 그의 모든 행동을 지배했습니다. 이 소년의 상태는 온 지역에 잘 알려졌었고, 다른 아이들의 부모들이 그를 보았을 때, 그들은 아마도 자기 아이들을 급히 집안으로 들여보냈을 것입니다.

이 불쌍한 소년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는 귀머거리인데다 말도 못했는데, 오직 목에서 나오는 이상한 소리를 낼 뿐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미친개처럼 입에서 거품을 토해 냈고 그의 몸은 바짝 말라 뼈만 앙상했으며, 그 끔찍한 고투로 인해 쇠잔해 있었습니다. 마귀들은 항상 그를 죽이려고 근처 강이나 호수, 또는 불 속으로 그를 던지려 했기에, 소년의 아버지는 계속 그를 붙들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

David Wilkerson

우리가 단순히,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 삶 속에서 불가능을 가능케 해주시려고 열망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만 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명확히 해줍니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그분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 의견으로는, 만일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심한다면, 아무리 많은 카운슬링을 한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크리스천 카운슬링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문제가 무엇이든, 하나님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고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사람을 상담하는 일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문제가 있는 부부라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관계를 올바로 해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제 상담은 헛된 수고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문제가 절대 가망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오랫동안 분노와 쓴 뿌리를 지닌 채 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만 합니다.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David Wilkerson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창세기의 이야기를 여러분은 기억할 것입니다. 이 족장이 한낮에 그의 텐트 앞에 앉아있을 때, 갑자기 세 사람이 그의 앞에 나타나 나무 아래에 서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서둘러 그들을 맞았고, 음식을 준비했으며,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대화하는 동안,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내 사라가 어디에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라, 네 아내 사라에게 한 아들이 있으리라.” (창세기 18:10)

그때 사라는 텐트 안에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아예 그 생각 자체에 웃었습니다. 그녀는 “그건 불가능해”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잉태할 수 있는 나이를 훨씬 넘어섰고, 아브라함 역시 아이를 생산하기에는 너무 연로했습니다.

그러나 사라의 웃음소리를 듣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사라가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정말로 아이를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13-14절)

그분은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Gary Wilkerson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는 온 이스라엘이 추종하는 열정적 선지자 세례요한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고기잡이 사업에서 일하면서, 그저 닥치는 대로 살아갔던 이 형제들은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은 그 무엇으로부터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저도 한때는 “천둥의 아들들”을 알았습니다. 한때 ‘Victory Outreach’라는 좋은 사역이 있었는데, 이 사역은 좋지 않은 배경을 가진 많은 사람을 구제했고, 그들은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온 후에도 담대함을 잃어버리지 않은 채로 남아있을 성도들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이 폭력배의 삶으로부터 하나님의 군단으로, 즉 두려움 없이 그들 마음속에 있는 것을 서슴없이 말하며 담대히 설교하는, 하나님 군단의 삶을 시작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가르침의 한계

Jim Cymbala

담대히 말하자면, 기독교는 단지 가르치기만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설교자를 추종하는 성향이 만연해 있습니다. 강단에서 올바른 교리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에게 필수적인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한 인재가 없이는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분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북미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예배 모임의 중심을, 사람들의 삶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 은혜의 보좌에 대해 중점을 두기보다는 설교에 초점을 둡니다.

예수님 공생애 시대에 유대인의 믿음은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들에 의해 통제되었습니다. 그들의 교리는 철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한다.” (요한복음 5:39-40) 그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잘 알고 있었으나, 그분이 그들 앞에 서 계시듯 살아 역사하는 말씀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David Wilkerson

권능의 하나님, 모든 능력과 권세에 뛰어나신 주께서 우리의 편에 서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전하고자 하던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너희의 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저희가 내 생명을 엿보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종적을 살피나이다.”(시편 56:9).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시편 118:6-7).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움과 걱정에 대한 해결책으로 시편 124편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그 때에 저희의 노가 우리를 대하여 맹렬하여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

완전히 믿는 것

David Wilkerson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태복음 10:31-33).

여러 도시의 전도운동을 다니면서 저는 이 말씀을 자주 인용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려놓기를 바라며 이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예수님, 나의 죄를 사하시고, 이제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합니다” 사실은 이러한 참회의 고백은 수 많은 사람들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고백이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시편 31:19). 이 구절은 앞서 언급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